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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講 重生을 體驗하는 生活
전홍엽  2018-05-24 09:11:52, 조회 : 786, 추천 :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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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강을 올리고 수 개월이 지났습니다.
또 다짐하며 올려 봅니다.

第2講 重生을 體驗하는 生活

고전 2:1-3:2
1○兄弟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證據를 傳할 때에 말과 智慧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2내가 너희 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十字架에 못 박히신 것 外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作定하였음이라3내가 너희 가운데 居할 때에 弱하며 두려워하며 甚히 떨었노라4내 말과 내 傳道함이 智慧의 勸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聖神의 나타남과 能力으로 하여5너희 믿음이 사람의 智慧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能力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6○그러나 우리가 穩全한 者들 中에서 智慧를 말하노니 이는 이 世上의 智慧가 아니요 또 이 世上의 없어질 官員의 智慧도 아니요7오직 秘密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智慧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榮光을 爲하사 萬世 前에 미리 定하신 것이라8이 智慧는 이 世代의 官員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萬一 알았더면 榮光의 主를 十字架에 못 박지 아니 하였으리라9記錄된 바 하나님이 自己를 사랑하는 者들을 爲하여 豫備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10오직 하나님이 聖神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聖神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通達하시느니라11사람의 私情을 사람의 속에 있는 靈 外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私情도 하나님의 靈 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2우리가 世上의 靈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靈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恩惠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智慧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聖神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神靈한 일은 神靈한 것으로 分別하느니라14肉에 屬한 사람은 하나님의 聖靈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靈的으로라야 分辨함이니라15神靈한 者는 모든 것을 判斷하나 自己는 아무에게도 判斷을 받지 아니하느니라16누가 主의 마음을 알아서 主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1○兄弟들아, 내가 神靈한 者들을 對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肉身에 屬한 者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對함과 같이 하노라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堪當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重生이 實質 生活에서 어떻게 確證되고 그것을 어떻게 體驗할 수가 있는가 하는 問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重生은 내 스스로의 勞力과 智慧로 얻는 것이 絶對로 아니라는 것을 앞에서 배웠습니다.
重生은 하나님의 크신 恩惠와 크신 생각으로 親히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것으로서, 지음을 받은 者가 스스로 ‘나는 요렇게 지어져야 하겠다'든지, ‘요렇게 나를 創造한다’고 絶對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重生 卽 “하나님 안에서의 새로운 創造”라는 말을 우리 스스로는 하지 못하고,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지으셨다는 것을 切實히 바로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깨달아야만 하나님의 恩惠라는 말도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恩惠란 하나님께서 當身의 뜻대로 거저 주시는 모든 幸福과 能力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特別히 重生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全的인 恩惠로서 사람의 어떠한 條件이나 狀態라는 것을 前提로 하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當身이 願하시는 대로 새로 創造하시되 그리스도의 生命안에서 居하게 하시고, 또한 그가 새로운 사람으로 나서 새로운 사람으로서 첫 발걸음을 디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變改와 聖神의 內住
이와 같이 새사람으로 지으심은 우리의 옛사람 卽 人間的인 나 自身을 없애고 全然 새것으로 形體를 이루어 놓는다는 말이 아니라, ‘나’라는 몸과 ‘나’라는 人間을 材料로 삼으사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生命 卽 復活의 生命을 부어 넣어 주심으로 내가 하나님에게서 새로 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生命의 供給을 받는 關係를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 새 生命을 나타내고 살기에 適應하게 하시고자 우리에게 있는 知, 情, 意의 여러 能力 卽 우리의 靈魂의 技能을 全部 고쳐 놓으셔서, 過去 ‘나’라는 옛 人間을 나타내기에 알맞던 것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生命을 나타내기에 適應한 것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例를 들면, 내가 어디를 들어가 살고자 할 때, 그 집은 벽돌과 함석으로 지은 倉庫라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窓만 하나 있으므로 빛이 변변히 들어올 구멍도 없고 門도 物件 들어갈 큰 門 하나만 있다면 거기에 그대로 들어가서 살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全部 改造하여 사람이 살 수 있도록 施設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 집 크기에 따라 잘 硏究하여 고쳐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重生을 했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生命을 넣어 주셨다는 말이므로 그 生命이 거기 居하면서 生命의 活動을 하게 하려면 最小한 그 生命이 그 안에 있을 만하게는 고쳐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고쳐 놓은 事實, 이것은 聖神의 크신 役事로 “고쳐 놓는다”든지 “變改시킨다”라는 말인데 神學上 改心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냥 改心이라고 하면 “마음을 고친다”라는 말처럼 들리므로 차라리 變改시킨다는 말로 記憶하는 것이 좋습니다. 變改시켜놓을 것 같으면 마치 고쳐 놓은 집의 房이 用處대로 쓰여, 사람이 그 속에 居處하면서 活動한 보람을 나타내듯이 새 生命도 變改된 靈魂의 技能들을 使用해서 새 生命이 어떠한 質이며 얼마나 榮光스럽고 能力 있는 것인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 重要한 것은 重生은 重生한 새사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聖神님 卽 그리스도의 神이 그 안에서 同時에 居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生命과 同時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神 卽 예수 그리스도의 神이 같이 居하시되 떠나지 아니하고 늘 居하십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江과 같이 흘러서 永遠히 다함이 없다”(요 4:14, 7:38)고 하신 말씀대로 聖神님이 居하시다가 그 사람이 罪짓고 墮落한다든지 해서 聖神님이 거기서 떠나버리시는 일은 絶對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永遠한 生命이 사람 속에 들어 있다가 그 사람이 잘못하므로 永生을 잃고 救援에서 떨어져 地獄으로 가는 일은 絶對로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永遠한 生命을 주노니 永遠히 滅亡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이 永生의 큰 事實이 永遠한 것과 같이 聖神께서도 “내가 주는 生命의 물은 그 배에서 江과 같이 흘러서 永遠히 마르지 아니하리라”(요 7:38-39)고 말씀하신 대로 永遠합니다. 이와 같이 聖神께서도 우리에게 한 番 臨하면 確實한 것이지 臨했다가 웬만히 나쁘면 떠났다가 그러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聖神께서 그 사람이 拒逆하고 잘못하여 聖神을 슬여 버리는데도 그 안에서 役事하실 때, 全的으로 잘 順從하는 사람 속에서 役事하시듯 役事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聖經은 聖神을 消滅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聖神이 그 안에 居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聖神의 感化, 하고자 하시는 일, 그 생각 또 거룩한 情緖 같은 것을 다 지워 버리고 사람의 肉身, 或은 肉身의 情慾과 感情과 뜻과 생각을 가지고, 그것이 훌륭하다는 口實로, 그것이 마땅한 것처럼 보이는 誘惑 때문에 하나님의 聖神을 消滅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消滅하면 聖神께서는 分明히 그 안에서 근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故로 “하나님의 聖神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 4:30)고 하셨습니다.

重生한 사람의 처음 狀態
聖神께서는 그 안에 늘 居하시면서 變改된 새사람의 靈魂의 技能을 쓰셔서 거룩한 그리스도的인 道德的 性格을 더 顯著하게 드러내십니다. 처음에 重生한 사람은 마치 갓 낳은 어린아이가 제대로 걷고 말하고 活動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인 만치 새로운 生命으로 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方式으로든지 나타냅니다.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울고 젖을 빨며 그 품에서 고이 잠자는 것을 볼 때 神奇하고 神秘한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이 자는 時間이 되면 아이도 쌕쌕거리며 자고, 어른들이 깨어 活動할 때 아기도 깨서 하닥하닥 하면서 젖을 찾기도 하는 것을 볼 때 귀엽고 神秘한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生命의 表現입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몸이 不便하면 울어서 그것을 어른들도 알게 하고, 엄마는 그것을 보고 보살펴 줍니다.
이와 같이 重生한 새사람도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主님이 내 救主이신 것과 그가 내 罪를 贖하신 줄 알고 感謝하고 感激하는 心情이 重生의 世界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世界로 새로 났다(골 1:13)는 事實을 맨 처음에 表示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世上, 사랑하시는 그 아드님의 世界에 다시 새롭게 誕生한 事實은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어린아이의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보고 生命이 아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 않고 우리가 어린아이를 볼 때 顯著하게 한 人間의 存在를 느끼는 것처럼, 重生한 사람도 처음에 날 때는 어린아이와 같을지라도 새로운 사람임을 남들에게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子息으로 誕生한 갓난아이라는 事實이 生生한 現實로 周圍에 늘 證明되는 것입니다.
그런故로 이런 生生한 現實로 證明되는 그의 存在, 여러 가지 姿態는 그것이 長成한 사람이 하는 方法으로 하지 못할지라도 어린아이답게 그의 存在를 爲해서 살아가는 最小限의 必要한 活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어야 하는 까닭에 갓난아이가 젖을 찾는 것과 같이 重生한 者가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狀態에서 젖을 찾아 求하는 것입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平易한 基本的인 道理를 自然스럽게 찾아서 먹으려 하고, 그때에 그것을 適當하게 잘 주면 달게 받아 먹고 消化해서 커 나가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젖을 찾는데 젖을 주지 않고 밥을 준다든지 或은 다른 것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젖으로 思慕하는 것은 하나님의 子女로 난 아기들의 當然한 本能的인 要求로서 그것이 萬一 自己에게 있는지 없는지를 全然 모르면 自身이 果然 하나님의 子息인지 아닌지를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에 對한 懇切한 思慕는 重要한 일로서 聖經에도 “詭譎이 없는 純全한 道의 젖을 思慕하라”(벧전 2:2)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말씀이 들어가면 ‘그냥 그러니라’ 하는 어떤 理致의 說明으로만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理致의 說明으로 그 안에 있다는 말은 사람이 어떤 哲理를 배우든지 哲學을 배우든지 또 機械를 보고 그 機械를 運轉하는 法을 배우면 ‘아, 그렇구나’ 하고 배워 두는 것입니다. 배워서 알면 그대로 機械를 使用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機械를 다룰 줄 알고 일하는 것을 배워서 해 나가는 것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生命으로 다시 나서 하나님의 子女인 어린아이가 되어 道의 젖을 思慕하면 그 거룩한 말씀을 받아서 長成할 때에도 그런 식으로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機械의 속을 알고, 쓰는 法을 알아서 使用하듯이 사람에게 “요렇게 가고 저렇게 가고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면, 그대로 하면서 어떤 좋은 사람이 되는 그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境遇는 世上의 道德이고 世上의 宗敎입니다.

自然스러운 長成의 姿態
하나님의 子女가 長成하는 道理에서 말씀을 먹고 자란다는 事實은 그런 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子女가 長成하는 姿態는 말씀이 들어가면 聖神님이 그 말씀을 쓰셔서 그에게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覺悟와 覺醒이 있게 하셔서 그가 ‘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려 해도 그 일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質問을 스스로 하게 되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 對해서 하나님께서는 “네 힘으로도 못하고 能力으로도 못하고 오직 聖神으로만 하는 것이다”(슥 4:6)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聖神을 좇아 行하라”(갈 5:16) 聖神님을 依支하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대로 내가 “아니요” 하고 反對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神靈하고 거룩한 姿態와 하나님 子息다운 姿態를 生活가운데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世上의 宗敎나 或은 世上의 道德이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遵行해서 이루어 놓은 姿態와 아주 다른 것입니다. 世上의 道德에서는 “너는 熱心을 내라, 부지런해라, 마음을 固定해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敎訓할 때, 사람은 그 敎訓대로 修養하고 勞力해서 相當히 그런 境地에 到達하게 되고 차츰차츰 그런 德이 많이 쌓여지면 道德君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道理도 그런 식으로 하나씩 쌓아올릴 수 있느냐 할 때, 쌓아올려서 만들어 보려고 하는 基督敎人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重生의 道理를 잘못 깨닫고 聖經이 가르치는 여러 敎訓을 잘 지키라, 罪를 함부로 짓지 말라 부지런히 하라, 熱心으로 敎會를 섬기라, 남에게 信實하라, 親切하라, 마음을 恒常 固定하라, 이런 道德的 敎訓을 가르치면 ‘아, 그래야겠다' 하고 하나하나를 勞力해서 해 보려고 하기는 합니다. 마치 世上 사람이 어떤 道德的 敎訓을 勞力하여 實踐해 보려는 것과 같이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다운 模樣을, 그런 人格的인 模樣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난 사람의 自然스러운 長成의 姿態가 아님을 注意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난 사람의 自然스러운 長成의 姿態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이고, 하라고 말씀하시는 일들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聖經에서 “부지런하라”해서 내가 가진 人間의 道德的인 能力을 가지고 부지런히 산다든지, “正直하라”해서 내가 가진 人間의 道德的인 能力으로 正直히 行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要求하시는' 그 境地, 그 純潔, 그 부지런을 願하십니다. 사람의 熱情을 가지고, 사람의 熱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元來 사람의 血肉에서 나온 어떠한 德과 어떠한 훌륭한 能力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遺業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血肉은 能히 하나님의 나라를 遺業으로 받을 수 없느니라”(고전 15:50).
그런故로 사람의 血肉에 依한, 卽 사람의 힘에 依한 사람의 生命의 活動에 依한 道德의 建設로는 참으로 하나님 나라다운, 거룩한 그 아드님의 나라의 生活을 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할 때, 聖經에 가르친 “무엇을 하라”는 여러 가지 條件은 重生한 사람이 새로운 生命을 가지고 長成하면서 차츰차츰 나타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方法은 말씀을 배워서 말씀의 뜻을 깨닫고, 聖神을 依支함으로 聖神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서 이루어 나가십니다(롬 8:1-4,8; 갈 5:16-17), 이것이 깨닫는다는 말인데 그때그때 問題에 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明確하게 깨닫고 그것을 自己 힘으로 하지 않고 聖神님을 依支하여 그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聖神님만 依支하는 生活
聖神을 依支해서 나갈 때에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聖神님을 부여잡는 懇切한 態度를 가지는 것입니다. 或은 속으로 끊임없이 ‘아, 아버지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내가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다가는 또 넘어지겠습니다. 到底히 이를 수 없습니다. 나를 꼭 붙들어 주옵소서. 나는 主님만 依支합니다. 무엇이 나를 支撑해서 하나님의 子息다운 거룩한 品性을 나타내겠습니까? 내가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내 長成의 分量에 合當한 만치는 하나님 子息답게 이제 나타내야겠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懇切한 마음의 要求가, 그런 祈禱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世上의 무엇도 依支해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다만 聖神님만 依支하는 것입니다. 世上의 돈이나 權力이나 다른 어떠한 境遇나 自己의 꾀나 其他 그러한 것들의 힘을 依支하지 않는 것입니다.
自己의 꾀를 부려서 아마 이렇게 하면 용케 나는 잘 빠져 갈 것이라든지 또 좋은 境地에, 남에게 尊敬받는 자리에 이를 것이라든지 그런 잔꾀를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主님 앞에 나와서 ‘主님,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가장 簡單한 말씀을 내게 주셔서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을 듯하지만, 제가 해 보면 結局 主님이 받으시는 姿態가 아닌 것을 압니다. 제 스스로 할 수 없사오니 모든 것을 맡기고 매 달립니다’ 하면서 主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義를 行하려 해도 그렇고, 걱정이 있어도 그렇고, 괴롬과 잘못에 빠졌을지라도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에 빠졌어도 念慮하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念慮하며 살아가는 데서도 여러 가지 念慮를 합니다.
그러나 “너희 念慮를 다 主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眷顧하심이니라”(벧전 5:7)는 말씀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眷顧하십니다. 子息으로 親히 돌아보사 모든 必要한 것을 주시고, 기르시고, 危險한 데가 있으면 當身의 품에 품어 주시고, 가기 어려운 곳이 있을 때에는 나를 안고 가시고, 내 걸음이 疲困할 때에는 힘 주셔서 疲困치 않게 하시고 또한 그 품안에 平安히 쉬게 하시고 내가 或은 잘못 가운데 빠져서 마음이 괴롭고 暗澹할 때에는 나에게 빛을 주시고 慰勞를 주시며 그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敎訓을 또한 받고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우리가 큰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때때로 마음에 두려움을 주시고 警告를 하시며 빛으로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主님만을 全部로 삼고, 依支하고 나가는 이것을 信仰이라, 믿음이라 하는 말로 表示합니다. 믿음이란 말뜻은 主님을 全的으로 依支하고, 主님만 부여잡고, 自己는 全的으로 無能한 것을 알고 나아가는 生活입니다. 훌륭한 聖者가 되려고 갑자기 무엇을 펴들지 않더라도, 生活 하나하나에서 主를 依支하는 것이 甚히 重要한 일입니다. 이것이 重生한사람의 生活의 一面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聖神님이 쓰셔서 깨닫게 하셔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살면 말씀에서 約束한 것이 참말이요 도무지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確證할 수 있고 實證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깨닫는 姿態입니다. 이렇게 聖神님께서 말씀을 쓰셔서 生活 가운데 體驗하게 하시고 우리 속에 깊이 담아 두셔야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깨닫는 것은 깊은 眞理에 對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經驗하고 實驗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經驗과 實驗이라는 것은 例가 되는 것이고 거기에 비춰서 잘 생각해 나갈 때 ‘아, 그 뜻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攄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가는 事實은 마치 어린아이 속에 젖이 들어가서 養分이 되어 기운을 내게 하는 것같이 우리의 生活에 힘을 내고 依支할 수 있는 條件들을 더욱 주는 것입니다. 이런 條件에 依支해서 每日 살아가는 것이 重生한 子女의 生活 方式입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 크신 恩惠를 저희에게 베풀어 주시사 永遠한 生命을 가진 새사람으로 더욱더 자라가게 하여 주심을 感謝하옵나이다. 聖神께서 저희 各 사람 안에 內住하시사 저희 안에 充滿하시어 저희 各 사람을 神靈한 者로 살게 하심을 感謝하옵나이다. 아버지, 그러하오나 저희는 罪人이옵나이다. 저희에게는 罪와 어둠과 腐敗가 있어서 옛사람이 저희 속의 새사람을 누르고 제가 힘있게 나타나고자 하는 狀態에 있음을 主께서 아시나이다.
사랑하시는 主님, 이제 저희 各 사람의 罪와 허물을 그리스도 예수의 功勞로 容恕하시고 聖神님의 役事로 淨潔케 하사 穩全히 새사람에 依하여 저희가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저희로 하여금 眞理를 더욱더 깨닫게 하시고 重生한 者의 生活 道理를 더 알 뿐 아니라 날마다 때마다 그 道理를 體驗하면서 主를 依支하고 나아가게 하시오며 그에 따라서 아버지께서 願하시는 바 거룩한 恩惠의 열매를 品性으로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聖神의 열매를 맺어 重生의 實證을 確實히 가지게 하시며 거룩한 그리스도의 敎會의 한 肢體로 各自의 義務를 깨닫고 充實히 履行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永生을 주셨을 뿐 아니라 저희를 現 世上에 두신 아버지, 땅 위에서 저희 各人이 한 사람으로, 또 社會의 一員으로 健全한 生活을 하며 義務를 行하고 世上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生活을 해 나가게 붙드시고 힘 주시며 引導하여 주옵소서. 저희 各사람이 眞心으로 各各 自己를 全的으로 獻身케 하사 主의 것으로 穩全히 쓰이기를 祈禱하옵나이다.
主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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