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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講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전홍엽  2016-12-10 11:21:06, 조회 : 1,332, 추천 : 229

第10講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요한一書 1:5-2:2
요일 1:5-2:2
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萬一 우리가 罪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眞理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萬一 우리가 우리 罪를 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義로우사 우리 罪를 赦하시며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萬一 우리가 犯罪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者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나의 子女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罪를 犯치 않게 하려 함이라 萬一 누가 罪를 犯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代言자가 있으니 곧 義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저는 우리 罪를 爲한 和睦 祭物이니 우리만 爲할 뿐 아니요 온 世上의 罪를 爲하심이라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는 罪로 말미암아 죽음 가운데 있는 者들을 救援하여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世上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使徒는 이 거룩한 뜻을 이루려고 그리스도의 福音을 傳하였습니다. 生命의 말씀을 온 世上에 땅 끝까지 傳하려고 힘썼습니다. 悔改하고 믿는 者가 生命을 얻고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交際할 수 있도록 하기 爲하여 힘썼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赦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며 하나님 가까이 있어서 親交를 나눌 수 있도록 부지런히 福音 使役에 힘썼습니다.

聖徒의 交際는 主께서 함께하심으로 거룩하고 高貴하게 하심
罪人이 義롭다 하심을 받고 거룩한 子女가 되며 變化를 받아 聖徒가 되어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버림을 받지 않고 가까이에서 親交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恩惠요 福입니다. 고린도前書 1:9에 이르기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主로 더불어 交際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큰 福인 줄 아시고 우리를 불러서 그런 사귐을 가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詩篇 25:14에도 이런 者의 福을 말하였습니다. “여호와의 親密함이 敬畏하는 者에게 있음이여 그 言約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救援을 얻고 하나님을 敬畏하는 者에게는 主 하나님께서 親密하게 對하여 주시고, 마치 아브라함에게 하시듯이 恩惠를 담은 言約을 施行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者를 또 사랑하셔서 같이 救援을 받고 하나님을 敬畏하는 者들과 사귐을 갖게 하시고 親密하게 하여 주십니다. 箴言 18:24에 이러한 사귐을 미리 말하여 주었습니다. “많은 親舊를 얻는 者는 害를 當하게 되거니와 어떤 親舊는 兄弟보다 親密하니라.” 우리 主 예수께서 親히 信者들에게 親舊라고도 하시고 兄弟라고도 하셔서 우리 믿는 者들로 하여금 서로 兄弟가 되고 親舊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믿는 者들이 肉身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聖神을 좇아 살면 서로 親密하게 되고 兄弟보다 가까운 親舊가 되고 世上의 어떤 親舊도 따를 수 없는 가까운 親舊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聖徒의 交際는 하나님의 救援의 恩惠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태福音 18:20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中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聖徒의 交際는 많은 數로 이루어서 能力을 發揮하는 것이 아니고, 小數라도 主께서 함께하심으로 그것을 거룩하고 高貴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舊約 時代에도 있었지만 예수께서 우리의 罪를 代贖하시는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 右便에 앉으신 뒤로 예루살렘에서 顯著히 能力 있게 일어나더니 次次로 모든 나라, 온 世上에 번져 나가기 始作하였습니다.
聖徒의 交際는 하나님의 救援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요한一書 4:9以下에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自己의 獨生子를 世上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罪를 爲하여 和睦祭로 自己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者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9-11節).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世上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救援을 얻고 生命을 얻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聖徒의 사귐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世上에서 크고 놀라운 일을 할지는 몰라도 聖徒의 交際에 들어오지는 못합니다. 聖徒의 交際에는 自己를 否認하고 새사람으로서 聖神을 좇아 사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니까, 모든 자랑을 옛사람과 함께 다 벗어 버리고 謙遜과 溫柔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獨生子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敎會를 爲하여 使徒와 先知者와 福音 傳道者와 牧師와 敎師를 세우셔서 羊 무리를 치게 하시고 聖徒를 거룩하게 保存하며 養育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目的으로 요한一書의 著者도 붓을 들어서 生命의 말씀을 傳하는 것입니다. 聖徒의 사귐을 建設하고 거룩히 保存하려고 먼저 그릇된 말을 하는 者들의 말과 主張의 잘못된 것과 虛妄한 것을 드러내고, 그 代身에 믿어야 할 것과 恩惠와 行해야 할 바 眞理를 傳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眞理의 빛 가운데 行함
첫째,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世上에 빛으로 오셔서 救援의 恩惠와 眞理를 傳하실 때에 깊은 어둠과 罪 가운데서 나와서 救援의 恩惠로 새사람이 되고 眞理의 빛 가운데 行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悔改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배운 바 眞理대로 살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兄弟愛가 있어서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贖罪의 功效가 더욱 나타나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한 사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贖罪의 恩惠로 赦罪와 義롭다 하심을 주신 것은 무서운 刑罰을 免除시켜 주고 말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거짓 것에서 풀려나 光明한 眞理 가운데서 하나님의 子女답게 自由로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말하면서 如前히 그리스도를 따르며 眞理를 行하는 것이 없이 어두움 가운데 걷고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사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는 것이 使徒의 첫째의 結論입니다.
둘째, “우리가 罪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眞理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했습니다. 罪가 世上을 亡하게 하며 그 威力을 크게 떨치고 있고, 사람이 다 罪가 있다는 事實은 너무나 뚜렷하여 否認할 수 없는데도 ‘우리가 罪 없다’ 하고 말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생각하고 살면 自然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聖經은 “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론 3:10) 하고 宣言했습니다. 또 여러 罪들을 記錄하여 놓기도 했습니다. 로마서 1:28-32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喪失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合當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不義, 醜惡, 貪慾, 惡意가 가득한者요 猜忌, 殺人, 紛爭, 詐欺, 惡毒이 가득한 者요 수군수군하는 者요 誹謗하는 者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者요 凌辱하는 者요 驕慢한 者요 자랑하는 者요 惡을 圖謀하는 者요 父母를 拒逆하는 者요 愚昧한 者요 背約하는 者요 無情한 者요 無慈悲한 者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行하는 者는 死刑에 該當하다고 하나님의 定하심을 알고도 自己들만 行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行하는 者를 옳다 하느니라.”
또 主 예수께서는 이러한 罪가 다 審判 때에 審判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無益한 말을 하든지 審判 날에 이에 對하여 審問을 받으리니 네 말로 義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定罪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하나님께서는 福音 傳播者들을 보내셔서 “어디든지 사람을 다 命하사 悔改하라”(행 17:30) 하셨습니다. 이는 天下를 公義로 審判할 날을 作定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天下의 사람을 다 모으시고 산 者와 죽은 者를 다 모으시고 各 사람의 行爲를 따라 審判하실 것입니다. 罪는 現世의 生活 現場에서도 때를 따라 審判을 받고, 或時 現世의 生活 現場이나 現世의 法廷에서는 숨겨지고 가려져서 어떻게 해서 避한 罪라도 마지막 날 審判은 避하지 못하고 刑罰을 받고 말 것입니다. 新聞이나 TV나 各種 情報 通信網을 通하여 들려오는 凶한 消息들이 罪가 氾濫하고 있는 것을 알려 주고, 하나님께서 審判을 알려 주시고 悔改를 命하시는 事實은 사람에게 罪가 있고 널리 퍼져 있음을 確證하여 줍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저런 理由로 罪를 認定하지 않고 特別히 自己에게 罪가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지내기가 쉽고, 그렇게 되면 이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 되어서 生命의 길에서 멀리 떠나게 됩니다. 世上에 있는 罪나 남에게 있는 罪는 잘 判斷하면서 가까이 自己에게 있는 罪는 잘 알지 못하거나 잘 認定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람의 弱點입니다. 그래서 나단 先知者가 다윗에게 찾아가서 罪를 말하고 責望할 때에도 어떤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始作했습니다. 나단은 先知者의 智慧로 사람의 普遍的인 弱點을 잘 안關係로 다윗 王의 罪를 바로 말하지 않고 他人의 罪로부터 말을 始作해서 마침내 ‘當身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남을 批判하는 그만큼 自身을 돌이켜보고 自己 行動을 批判하는 것이 참으로 智慧이겠습니다. 自己 罪를 자꾸 감싸고 辨明하려는 代身에 自己에게 주신 分別力의 빛으로 自己를 살피고 主께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或時 다른 사람이 自己 行動을 責望하면 그것이 비록 모두 다 맞는 말이 아닐지라도 달게 받으면 有益할 것입니다. 自己의 罪를 認定하지 않고 숨기려는 弱點을 克復하고 하나님의 恩惠의 빛에 나아오면 스스로 속이는 危險한 길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罪 없다’하고 말하게 되는 것에는 罪가 行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품는 것이기 때문에 自己도 잘 모르고 속아서 지내는 點도 있습니다. 墮落한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罪를 품고도 罪人 줄 모르고 지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律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罪를 알지 못하였으니”라고 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바울 使徒가 “律法이 貪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貪心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하였습니다. ‘貪心이 罪가 되는 구나’ 하는 것을 律法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면 律法을 듣지 않았더라면 自己는 몰랐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으로 慾心을 낸 것이 무슨 罪인가, 남을 해치기를 했나, 아무도 모르게 내 마음으로 무엇에 對한 慾心을 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罪가 될까?’ 하겠지만, 主 예수께서도 어떤 사람이 兄弟간의 計算問題로 解決하여 주시라고 나아왔을 때에 裁判長이 되기를 拒絶하시면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삼가 貪心을 물리치라’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5에는 “貪心을 버리라. 貪心은 偶像 崇拜니라” 하였습니다. 貪心이 偶像 崇拜라면 그것이 작은 罪가 아닙니다.
主께서는 子女들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恩惠로 滿足하고 感謝하며 살기를 願하시고 世上 사람처럼 貪慾이 가득하기를 願치 않으십니다. “마음이 淸潔한 者는 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子女가 物慾이 됐든지 性慾이 됐든지 名譽慾이 됐든지 慾心이 가득한 사람이 아니고 깨끗이 씻음을 받은 淸潔한 사람으로 살면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行動으로 짓는 罪가 큰 罪이지만 마음으로 짓는 罪도 못지않게 큰 罪입니다. 로마서 1章 끝에 罪를 論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行하는 者는 死刑에 該當하다고 하나님의 定하심을 알고도 自己들만 行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行하는 者를 옳다 하느니라”(32節). 남의 惡行이라도 惡行이면 忿하게 여겨야 올지, 그것을 마음으로 옮다 하고 贊同을 하면 그것이 罪가 됩니다. 작지 않은 罪입니다. 로마서 1章에서 罪를 論하는 그 論調로 보아서는 더 큰 罪人 것처럼 들립니다. 앞에서 이런 것이 罪라 하고 罪를 다 列擧하였는데, 그것들보다도 맨 마지막에 말한 이 罪가 훨씬 더 큰 罪人 것처럼 울려옵니다. 그러므로 罪를 깨닫기 爲해서는 하나님의 律法을 배우고 誡命을 배우는 것이 必要합니다. 誡命을 잘 모르는 동안에는 罪를 지으면서도 泰然하고 怠慢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罪를 깊이 깨닫고 悔改하기 爲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必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眞理를 가르쳐 주는 대로 ‘나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救援하셨으며 날마다 生命과 呼吸을 주시고 쓰고 살 萬物을 주시고 날마다 主를 힘입어 起動하며 있게 하시는 者라’ 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아버지를 依支하고 感謝하며 살아야 할 것을 알고 自己는 하나님 앞에 그런 被造物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榮光을 드러내야 할 그의 百姓이요 子女 임을 認定할 때에 비로소 自己의 罪도 赤裸裸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빚진 것도 드러나고 感謝치 않은 것도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배우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면 悔改해야 할 罪가 무엇인지 自己의 갈 길이 무엇인지 뚜렷이 나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稀微하면, 그래서 汎神論이나 自然神論을 가지거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 不徹底한 가운데서는 實狀 罪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됩니다. 무서운 罪도 歲月이 가면 그냥 稀微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眞理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行動으로 나타나는 罪도 있고 마음으로 짓는 罪도 있습니다. 또 사람에게 짓는 罪가 하나님께 짓는 罪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形象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被造物이고, 또 믿음의 兄弟는 特別히 그리스도께서 그를 爲하여 代身 죽으신 兄弟인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無視하지도 말고 判斷하지도 말고 서로 矜恤히 여기며 가르치며 참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또 信者는 眞理를 배운 者답게 우리가 날 때부터 타고난 原罪에 對해서도 ‘敎會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더라’ 하는 程度로 남의 일같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創造者이신 事實과 사람을 지으실 때에 깊이 사랑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여 順從하며 하나님의 榮光을 爲하여 살되, 個人이 아니고 두 사람으로부터 始作해서 蕃盛하여 社會的으로 하라고 하신 것과, 따라서 罪의 責任도 連帶性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人類의 始祖의 罪가 우리의 罪人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제서 우리의 代表者가 되시고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爲하여 義를 이루심으로 우리는 아무 義를 이룬 것이 없을지라도 그리스도의 德澤에 恩惠로 義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고 感謝하는 것처럼, 아담의 罪와 失敗를 나의 罪와 失敗로 알고 아프게 생각하고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原罪가 있게 되는 것이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救援을 받게 되는 것이 다 한 하나님의 奧妙하신 攝理의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은 取하고 저것은 自己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버리고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攝理의 一旦을 우리는 日常生活에서도 봅니다. 한 家庭의 家長이 일이 잘되고 榮譽를 얻으면 그 잘된 것은 모든 家族의 榮譽가 되고, 家長이 惡德을 쌓아서 社會의 指彈을 받으면 全 家族의 羞恥와 滅亡이 됩니다. 그것은 아무도 否認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작은 規模에서 事實이고 自然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全 人類에게 擴大하여 생각하면 理解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注意할 것은 아담이 人類의 祖上이고 모든 사람이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點에서 그가 人類의 代表로 서기에 合當하고 自然스럽지만, 原罪의 問題에서 아담의 모든 行爲와 罪가 다 代表의 意味가 있고 影響을 끼친다고 말할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그를 一定 期間 代表로 세우시고 試驗을 行하신 것입니다. 그 期間에 順從하여 義를 얻었으면 모든 人類도 義를 얻어 生命과 榮光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不順從하고 罪를 지어 모든 사람이 罪責을 지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앞에 이르러 眞理를 배울 때에는 主 하나님께서 그 모든 行事에 能力과 智慧가 無窮하시고 公義로우시고 慈悲로우시며 恩惠로우시며 眞實하심을 배우며 깨달아 讚頌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의 말씀 곧 舊約과 新約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惡人과 善人의 復活이 있을 것을 믿고,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에 對하여 良心에 거리낌이 없이 살기를 힘쓸 것입니다. 眞實한 信者는 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깨닫는 罪를 다 告白하고 깨끗하게 하여 주심을 받고 救援의 確信과 즐거움으로 主께 忠誠하며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良心에 거리끼는 것을 다 告白하고 깨끗이 씻음을 받으며 살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므로 우리를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敎訓 안에서 良心에 거리낌이 없이 살려고 하는 限度 內에서는 믿음의 膽大함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믿음이요, 마땅히 가져야 할 生活 態度인데도 不拘하고 ‘우리가 罪 없다’ 하면 그것은 크게 속는 일입니다. 스스로 속이는 일이요 傳播된 眞理를 外面하고 버리는 態度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恩惠로 傳播된 眞理를 버리지 않고 看直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罪 없다 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罪를 自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義로우셔서 우리의 罪를 赦하시고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9節이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萬一 우리가 우리 罪를 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義로우사 우리 罪를 赦하시며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 말씀이 果然 하나님의 말씀이요 啓示의 말씀이라는 것을 發見합니다. 사람의 생각 같으면 ‘저는 미쁘시고 慈悲하사 우리 罪를 赦하시며’ 라든지 무슨 容恕와 關聯된 하나님의 屬性을 말할 것 같은데, 義로우심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미쁘시고 義로우사 우리 罪를 赦하신다.’ 義로우신 關係로 우리 罪를 赦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赦하시기 爲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救援의 일을 行하시되 義로우신 일을 行하쳤기 때문입니다. 義로우신 者로서 不義한 者들을 爲하여 贖罪의 刑罰을 代身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贖罪는 하나님께서 어떤 神들이나 偶像과 달리 거룩하시며 罪가 없으시며 義로우시다 하는 것을 잘 나타내는 하나님의 行爲입니다. 로마서 3:25-26에 이것을 잘 나타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因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和睦 祭物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中에 前에 지은 罪를 看過하심으로 自己의 義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自己의 義로우심을 나타내사 自己도 義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者를 義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를 十字架에 내어 주셔서 罪 없는 몸이지만 十字架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그 일이 하나님께서 義로우시다 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悔改하고 그를 믿는 者는 義롭다 하심을 받도록 하기 爲해서 그 두 가지 事實을 온 世上에 나타내기 爲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十字架는 하나님의 義로우심을 燦然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계서 慈悲하시므로 救援을 約束하시고 또한 미쁘셔서 그 約束을 지키시되 獨生子를 보내셔서 우리 罪를 爲하여 피 흘려 贖罪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至極히 義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恩惠는 ‘우리가 罪 없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 眞理를 배워서 안대로 自己가 行한 罪를 自白하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自己의 罪를 숨기는 者는 亨通치 못하나 罪를 自服하고 버리는 者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眞實한 말씀입니다.
셋째, “萬一 우리가 犯罪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것말하는 者로 만드는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犯罪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앞의 主張보다 훨씬 뻔뻔스러운 것입니다. 行動으로 나타난 罪는 마음으로 짓는 罪나 原罪와는 달리 自己나 남이라도 쉽게 알고 指摘할 수 있는 罪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否認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番 여러 番 사람이 一般으로 例外 없이 땅 위에서 罪를 犯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列王記上 8:46에 “犯罪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하였고, 詩篇 14:2-3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人生을 굽어 살피사 知覺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者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者가 되고 善을 行하는 者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하였습니다. 傳道書 7:20에 “善을 行하고 罪를 犯치 아니하는 義人은 世上에 아주 없느니라” 하였고, 로마서 3:23에도 “모든 사람이 罪를 犯하였으매 하나님의 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自身에 對해서나 이웃에 對해서나 하나님께 對하여 바른 關係를 維持하고 살도록 하셨고, 律法으로 誡命으로 이것을 宣言하시고 이것을 어겼을 때에 罪라, 곧 “罪는 不法이라” 하고 요한一書 3:4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셨고, 사람이 普遍的으로 犯罪하는 것을 彈劾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犯罪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啓示하신 事實을 正面으로 否認하는 것이고 거기에 挑戰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全體的으로 判斷하여서 거것말하는 者로 規定하는 行爲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尊重하고 받아서 그 말씀을 지키고 사는 信者의 態度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犯罪하지 않았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者로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拒絶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다면 決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罪 가운데 죽음 가운데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고 滅亡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爲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셨사오며, 그의 無限한 恩惠로 저희를 罪 가운데서 죽음 가운데서 救援하여 주셨사오니 하나님의 사랑은 眞實로 거룩하며 크옵나이다. 저희가 날마다 이 世上에서 살면서 經驗하고 겪는, 恒常 곁에 바라보고 괴로워하는 이 무서운 罪들에서 저희를 救出하여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피로 赦함을 받고 깨끗이 씻음을 받고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子女로서 하나님의 百姓으로서 平安 가운데 살 수 있게 하셨사오니 얼마나 感謝한 일인지 알 수 없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主의 使徒들을 세우셔서 이 福되고 기쁜 消息을 滿天下에 傳播하게 하여주시고 저희에게까지 이르게 하여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聖神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말씀을 拒絶하지 않고 받고 믿을 수 있게 하심을 眞實로 感謝하옵나이다. 이 모든 것이 主께서 行하신 일이요 저희를 爲하여 行하신 일인 줄 믿사옵나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에게 더욱 恩惠를 베푸셔서 이런 큰恩惠를받아 赦罪함을받고 깨끗함을 받게 하여 주셨사오니 저희로 하여금 主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바 眞理를 더욱 깊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恩惠가 얼마나 豊盛한지 그 至極히 豊盛한 恩惠를 저희가 맛보고 그 가운데서 자라며 恒常 그 恩惠를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果然 主님께서 베푸신 恩惠가 헛되지 않고 저희 가운데서 그 結實을 忠實히 다 이루셔서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子女가 되게 하시고 이 世上에서 사는 동안에도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참고 善을 行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能力을 이 世上에 確證할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無限한 榮光을 돌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主께서 저희를 불러서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게 하시고 가까이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오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하시며 또한 兄弟들을 부르셔서 함께 同居하게 하셨사오니 여기에도 더욱 큰 恩惠를 내려 주셔서 兄弟愛가 더욱 있게 하시고 聖徒의 사귐이 더욱 眞實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로 因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能力이 이 世上에 나타나게 하시고 이 世上이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있게 하시고 自己들도 하나님께서 眷顧하시는 날에 忽然히 마음에 眞理를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7. 14.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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