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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8講 生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行함
전홍엽  2016-10-22 11:12:14, 조회 : 1,106, 추천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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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8講
生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行함
요한一書 1:6-7
요일 1:6-7
6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世上에 오실 때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世上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환하게 밝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世上에 오셨을 때에 世上은 어둠이 물러가고 밝아졌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어둠은 빛을 거스르고 對敵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勝算이 없는 싸움을 싸울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世上의 빛으로 오심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自己 땅, 自己 百姓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自己 百姓 이스라엘은 그를 迎接하지 않고 罪人과 같이 十字架에 못 박았습니다. 小數의 참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믿고 迎接하여 하나님의 子女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世上의 빛으로, 世上의 救主로 오셨습니다. 땅에서 일하실 동안에는 팔레스타인에 局限하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者를 찾아 救援의 일을 하셨지만, 復活하고 昇天하여 하나님右便에 앉으신 다음에는 世上에 빛을 비추기 始作하셨습니다. 弟子들에게 命하셔서 “聖神이 너희에게 臨하시면 너희가 權能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證人이 되리라”(행 1:8) 하셨습니다. 弟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모든 나라, 모든 民族에게 傳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福音이 온 世上에 傳播되어 世上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둠은 繼續하여 비치는 이 빛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무지 가운데서 거스르며 對敵하며 억누르려고 하지만 成功하지 못했고, 빛은 繼續해서 비처 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신 것같이 使徒들을 일으켜서 빛을 삼으시고 福音 眞理를 땅 끝까지 傳播하게 하셨습니다.
聖經에서는 魔鬼를 가리켜서 ‘온 天下를 꾀는 者’라고 하였습니다. 요한啓示록 12章에 “큰 龍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魔鬼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天下를 꾀는 者라” 하였습니다. 사탄은 매우 奸巧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嚴然히 있는데 이 眞理의 곁에 거짓을 내놓아서 사람을 꾑니다. 아주 무섭습니다. 온 天下를 꾑니다. 그 結果, 땅에는 眞理를 찾기가 어렵고 어둠이 덮쳐서 하나님의 뜻을 求하려고 해도 至極히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世上에 罪가 들어오고 罪가 퍼져서 罪의 代價로 죽음이 모든 사람을 支配하게 되었고. 世上이 死亡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太初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啓示者로서 肉身이 되어 世上에 오셨으므로 證人으로 세움을 받은 使徒들이 가까이에서 뵐 때에 아버지의 獨生子의 榮光이 그에게서 나타나고 恩惠와 眞理가 充滿하였습니다. 아들로서의 榮光, 하나님과 同等이신 榮光, 天地를 지으신 創造者의 榮光이 그에게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恩惠와 眞理가 가득하였습니다. 또한 恩惠와 眞理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에게 恩惠와 眞理가 充滿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自己 땅 自己 百姓에게 오신 일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同等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世上을 創造하신 그리스도께서 世上에 오실 때에 다른 나라를 다 제처 두고 이스라엘 百姓 가운데 태어나신 것은 그 나라 百姓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恩惠요 榮光이었습니다. 이스라엘 百姓은 다른 나라의 百姓과 똑같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의 모든 恩澤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 百姓은 歷史上 隋時로 하나님의 사랑과 保護를 받아 한 民族 國家로 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百姓도 本質上 罪人이요, 다른 나라 百姓과 같이 罪 가운데 있어서 스스로 救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他民族보다 뛰어나거나 거룩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恩惠 言約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로서 다윗의 子孫으로서 이스라엘 나라에 보내심을 받아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百姓이 特別히 本質的으로 나은 것이 있고 優秀한 것이 있어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恩惠로 하신 그 言約에 따라 하나님의 約束을 지키기 爲하여 이스라엘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使徒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일을 말할 때에 “自己 땅에 오매 自己 百姓이 迎接지 아니하였으나”(요 1:11)라고 記錄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百姓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恩惠로 부르셨고, 그와 그의 子孫에게 거저 恩惠를 베푸셔서 스스로 義로움이나 資格이 全無한 者를 오직 하나님의 矜恤과 恩惠로 세우셔서 하나의 獨立된 民族 國家로, 하나님의 法을 아는 神政 國家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世上에 오셨을 때에 참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矜恤을 노래하였고 하나님의 恩惠의 言約을 記憶하였습니다. “讚頌하리로다 主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百姓을 돌아보사 贖良하시며 우리를 爲하여 救援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우리 祖上을 矜恤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言約을 記憶하셨으니 곧 우리 祖上 아브라함에게 盟誓하신 盟誓라”(눅 1:68-69, 72-73). 洗禮者 요한의 아버지 사가라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百姓 多數는 自己 民族이 選擇받은 百姓이고 自己 나라가 本質的으로 다른 나라와 다른 特別한 나라인 줄 생각하고 높은 마음이 있어서 그리스도를 迎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拒絶하였습니다. 主 예수께서 나사렛 本 동네, 故鄕 나사렛의 會堂에서 가르치실 때에 모든 恩惠로운 말씀을 다 歡迎하는 듯하더니, ‘이스라엘 百姓이라도 하나님의 恩惠를 感謝히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謙遜한 마음을 가져야지 하나님의 恩惠를 當然히 받을 것같이 여기면 所望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異邦人들이 앞설 것이다. 엘리야 時代의 사렙다의 한 寡婦를 생각하고 엘리사 時代의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救援을 받은 것을 생각하라’하는 要旨로써 말씀을 하실 때에 나사렛 사람들이 忿을 내어서 그를 洞里 밖으로 내쫓고서 낭떠러지에서 밀쳐 내리치고자 했습니다.
그 後에 그리스도께서 大祭司長과 長老들, 또 바리새人들에게 洗禮者 요한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悔改하지 않은 것을 責望하여 빛을 비추어 주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빛으로 나아오지 않고 어둠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이 義人을 죽일까 하고 陰謀를 꾸몄습니다. 그리스도는 眞理로서 그 時代를 비추며 하나님의 敎訓을 가르쳐서 그릇된 敎訓을 除去하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羊 外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하시면서 멀리 가지 않으시고 유대와 갈릴리 或은 사마리아, 요단東便 베레아등을 오가시면서 팔레스타인에 局限하여 부지런히 救援의 일을 하셨습니다. “너희 中에 누가 나를 罪로 책잡겠느냐. 내가 眞理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 8:46) 하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는 眞理를 말씀하시고 거룩하게 行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待接한 것은 十字架였고, 恩惠를 惡으로 갚았습니다. 이사야의 슬픈 歎息과 豫言이 이때에 實現되었고 最高潮에 달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子息을 養育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拒逆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主人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百姓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犯罪한 나라요 허물 진 百姓이요 行惡의 種子요 行爲가 腐敗한 子息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者를 漫忽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2-4).
果然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百姓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서 가르치시고 善한 일을 行하신 것과 그 百姓들이 그리스도에게 行한 것을 살펴볼 때에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끼치신 恩惠와 眞理가 무엇이며 人間의 어둠과 罪가 무엇인지 가장 잘 드러납니다.

救援을 얻고 生命을 얻는 길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여러 가지 말로 表示합니다. “우리가 아직 罪人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爲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對한 自己의 사랑을 確證하셨느니라”(롬 5:8). “사람이 義롭게 되는 것은 律法의 行爲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律法의 行爲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義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律法의 行爲로써는 義롭다 함을 얻을 肉體가 없느니라”(갈 2: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自己의 獨生子를 世上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罪를 爲하여 和睦祭로 自己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者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9-11).
그리스도께서 世上에 오셔서 이러한 恩惠를 나타내시고 이런 큰眞理를 啓示하신 것은 어둠과 罪 가운데 있는 이 世上에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어둠과 罪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恩惠로 悔改하여 救援을 얻고 生命을 얻으며 眞理를 알고 깨어 魔鬼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시기 爲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오시고 恩惠와 眞理를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救援을 얻고 生命을 얻는 길은 悔改하고 빛으로 가까이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 定罪는 이것이니 곧 빛이 世上에 왔으되 사람들이 自己 行爲가 惡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惡을 行하는 者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行爲가 드러날까 함이요 眞理를 좇는 者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行爲가 하나님 안에서 行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 3:19-21). 빛으로 나아오기 爲해서는 自己 行爲가 惡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거나 빛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살 길이 없습니다. 自己 行爲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기만 해서도 所望이 없습니다. 自己 行爲가 惡한 것이 빛에 드러날까 해서 避한들 언제까지 避할 수도 없습니다. 自己 行爲가 惡한 것이 빛에 드러날 때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認定하는 것이 智慧입니다. 빛이 나를 救援하고 살리고 깨우치려고 하는 것을 알고 빛을 사랑하고 빛으로 가까이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계서 親히 標準을 세워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是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是認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否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否認하리라”(마 10:32-33). 甚至於 사람들이 ‘너도 예수를 믿느냐?’하고 비웃기도 하고 등을 돌리고 或은 威脅하고 죽이려고 할지라도 그들 앞에서 떳떳이 예수 그리스도가 救主시고 主이심을 告白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 서게 되고 우리를 相關하신 者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날 때에, 그것을 그대로 是認함이 참智慧요 빛의 子女가 되는 길이요 사는 길입니다. “어두움에 다니는 者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5) 하고 말씀하신 대로 人生의 目標나 目的地도 없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코앞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이 빛 가운데 걷게 되는 그 지름길이 어디 있느냐 하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自己의 惡함이나 無知나 惡行이 빛 가운데 드러날 때에 부끄럽지만 謙遜히 ‘果然 그렇습니다’ 하고 是認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智慧를 주는 말씀도 主께서 해 주셨습니다. “나무도 좋고 實果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實果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實果로 나무를 아느니라‥‥‥善한 사람은 그 쌓은 善에서 善한 것을 내고 惡한 사람은 그 쌓은 惡에서 惡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3, 35). 自己에게서 惡한 말이나 罪惡的인 行動이 나왔을 때에 例事로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善한 사람인데 어쩌다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自己를 容恕하고 곧 잊어버려서는 智慧가 아닙니다. 主님의 말씀에 비춰 보면 惡한 行爲가 한 番이라도 自己에게서 나왔으면 그것은 自己가 惡하기 때문에 惡한 나무인 自己에게서 이런 惡한 열매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智慧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自己를 辯護하는 것보다는 ‘어둠과 無知가 나를 두르고 내가 쌓은 惡에서 이 惡이 나온다’ 하고 判斷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自己 안에 있는 罪를 發見하고 自己가 罪人인 것을 깨닫고 救援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恩惠가 切實히 必要한 者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自己임을 認定하고 빛으로 나아오는 것이 살길입니다. 사람의 心理는 이러한 때에 大體로 달리 움직이기 쉽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것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이번에 잘못했으니까 다음에 善行을 倍나 하면 平衡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善行을 힘씀니다. 奮發해서 善을 더 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을 許諾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온 律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犯한 者가 되나니 姦淫하지 말라 하신이가 또한 殺人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姦淫하지 아니하여도 殺人하면 律法을 犯한 者가 되느니라”(약 2:10-11).
하나님의 말씀을 無視하고 그의 法을 어겼다면 다른 法을 지키며 善行을 한다고 그 지은 罪를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贖罪의 恩惠를 힘입어야만 容恕를 받을 수 있고 義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나뿐 나무가 되지 않고 좋은 나무가 되어야 根本 問題가 解決될 텐데, 그것도 오직 나를 爲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聯合하여 새사람으로 사는 것에 生命의 길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爲하여 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十字架에 못 박혔다고 믿음으로 自己를 評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代身해서 죽으셨으므로 내가 十字架에 달려서 피를 흘리지 않았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爲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죽은 것으로 評價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도 비록 내가 十字架에서 피를 흘리고 죽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十字架에 못 박혀 죽었다’ 하고 認定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恩惠를 認定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自己 行動 하나, 罪지은 일,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슬퍼할 뿐만 아니라 自己가 全體로 罪人임을 是認하고 主님께 하나님의 容恕와 깨끗하게 하여 주심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義롭다 하심을 받고 깨끗하게 하여 주심을 받는 길은 다른 아무 길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贖罪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外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런 極端的인 方法을 取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들을 世上에 보내시고 罪人들에게 많은 궂은일을 當하게 하시고 苦痛을 當하게 하시고 마침내는 피를 흘리기까지 하게 하셨습니다. 全能한 能力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全能하시기 때문에 公義롭고 恩惠로운 길을 擇하여 그리스도를 十字架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智慧와 義로움과 거룩함과 救贖함이 되셨으니” 라고 고린도前書 1:30에 말씀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智慧와 義로움이 되실 뿐 아니라 거룩함도 되십니다.
그러므로 生命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빛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와서 주시는 恩惠와 眞理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믿고 나아오는 사람을 그 아들 예수의 피가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恩惠로 깨끗함을 얻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빛 가운데 걷게 되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게 되고 聖徒와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行함에는 例外가 없음
그런데 萬一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洗禮를 받았고 敎會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實狀은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일이 없고 씻음을 받은 것이 없이 빛 가운데 生活하지 않고 如前히 어두움 가운데 걸어간다면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고 그들의 行爲는 眞理를 行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生命의 말씀이 가르칩니다. 6節에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움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 거니와”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自身을 살피고 自身의 行爲를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惡人은 그 길을, 不義한 者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矜恤히 여기시리라.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容恕하시리라”(사 55:6-7). 이사야 先知者의 목소리입니다. 生命의 말씀은 마음으로 믿을 것이요 믿은 것은 입으로 告白할 것이요 또한 몸으로 行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속임의 목소리가 世上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使徒는 이 眞理를 聖徒들에게 傳하는 것이고 오랜 後 世上 끝 날까지 모든 聖徒들이 들으라고, 또 어둠 속에서 보라고 빛을 宣傳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비추어 自己 行爲를 살피고 自己 自身을 反省하는 일은 빛 가운데 行하지 않고 如前히 어두움 가운데 行하는 사람도 必要하고. 하나님의 恩惠로 빛 가운데 行하고 있는 사람도 똑같이 必要합니다. 이 敎訓을 하는 使徒 自身도 自身을 여기서 除外하지 않았습니다. 自己는 關係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聖徒들을 爲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두움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6-7節). ‘너희가’란 말을 쓰지 않고 ‘우리가’라고 하였습니다. 自己를 包含하여 ‘우리가’ 또는 ‘우리도’라고 하였습니다. 앞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종이요 使徒로서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5節) 하고, 또 그앞 3-4節에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하여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한다’ 하는 使徒로서의 意識을 가지고 傳하였습니다.
그러나 實踐 問題에 들어가서 ‘그 生命의 말씀을 듣고 如前히 어둠 가운데 걷느냐, 아니면 이제는 悔改하고 빛으로 나아와서 빛 가운데 걷느냐?’ 하는 問題 앞에서는 自己는 治外法權이라도 있는듯이 除外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믿고 行하라는 것이 아니고, 自己도 그 안에 넣어서 이야기합니다. 6-7節에는 ‘우리가’, ‘우리도’라고 하였고 ‘너희’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區別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3-5節에서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다’ 하고, 이렇게 ‘우리’와 ‘너희’라는 말을 써서 그는 使徒로서의 意識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傳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權威를 가지고, 使徒의 權威를 가지고 傳합니다. 그러나 6-7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느냐 안 믿느냐, 듣고 行하느냐 行하지 않느냐?’ 하는 問題 앞에서는 自己를 거기에 包含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自己도 選擇을 해야 합니다. 使徒라고 하여 救援은 받아 놓은 것같이 생각하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親 弟子 열둘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고 榮光스러운 使徒職을 받았지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聖徒의 사귐에 參與하지 못하고 제 곳으로 갔습니다. 使徒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服從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傳播한 後에 自己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그 앞에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者마다 모든 일에 節制하나니”(25節)라고 했고, 여기서는 自己 몸을 쳐 服從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自己를 反省하고 自己 行動을 살피는 사람의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르치는 것을 注意하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如前히 어두움가운데 있는 사람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고 眞理를 行치 않는 줄을 깨닫고 속히 悔改해야할 것입니다. 自己 自身을 살펴볼 때에 自己가 本來 나쁜 나무였지만 하나님의 恩惠로 빛 가운데 부르심을 받고 모든 罪에서 깨끗이 씻음을 받아서 빛 가운데 行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恩惠에 感謝하고 膽大한 마음을 가지고 眞理를 行하고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에게까지 들려주시고 비춰 주심을 感謝하옵나이다. 하나님의 救援의 말씀, 生命의 말씀을 저희가 들을 때에 이것을 허술하게 듣지 않게 하여 주시고, 빛이 저희에게 비칠 때에 저희가 避하지 않고 저희 自身이 그 빛에 드러나는 것을 살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는 것을 救援의 期會로 생각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果然 하나님의 救援의 恩惠를 받아서 罪의 容恕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 恩惠를 받고 믿은 바를 입으로 告白하고 몸으로 行하는 事實이 없으면서도 예수를 믿는 것같이 생각하고 洗禮도 받고 敎會에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速히 悔改할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主님의 恩惠로 果然 그리스도의 救援의 恩惠를 마음으로 깨닫고 眞正으로 믿고 입으로 그 福된 告白을 하고 또한 生活을 할 때에 聖神을 依支하여 빛 가운데 걸어가는 事實이 自己에게 있는 것을 發見한 聖徒는 그것으로 因하여 하나님께 感謝하고 하나님의 恩惠를 感謝하고 더욱 膽大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恩惠로 말미암아 永遠한 生命을 받은 것을 믿고 確信할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빛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저희에게 生命의 말씀이 傳播되게 하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이 모든 恩惠가 저희에게 다 效驗이 있게 하여 주시고 聖神님께서 이 恩惠를 저희의 마음에 다 깨닫게 하시고, 이 恩惠를 끼쳐 주셔서 저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고 純潔한 信仰을 갖게 하시고 穩全한 信仰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빛 가운데서 膽大한 마음으로 眞理를 行하는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6. 30.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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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  第8講 예수님의 弟子로 사는 生活(2)    전홍엽 2018/07/30 162 800
705  第7講 예수님의 弟子로 사는 生活(1)    전홍엽 2018/07/17 182 773
704  第6講 하나님과 交通하는 生活(2)    전홍엽 2018/07/03 160 700
703  第5講 하나님과 交通하는 生活(1)    전홍엽 2018/06/28 164 862
702  第4講 生命의 聖神의 法이 主張하는 生活    전홍엽 2018/06/14 154 793
701  第3講 眞理를 分別하고 깨닫는 生活    전홍엽 2018/05/30 144 809
700  第2講 重生을 體驗하는 生活    전홍엽 2018/05/24 163 787
699  第1講 重生前의 生態    전홍엽 2017/06/07 172 1128
698  第10講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전홍엽 2016/12/10 229 1333
697  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전홍엽 2016/11/10 261 1416
 第8講 生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行함    전홍엽 2016/10/22 170 1106
695  第7講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거룩한 變化    전홍엽 2016/10/13 187 1021
694  第6講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전홍엽 2016/10/06 186 1273
693  第5講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    전홍엽 2016/09/17 171 1233
692  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전홍엽 2016/09/09 168 1164
691  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전홍엽 2016/08/26 218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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