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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講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전홍엽  2016-10-06 14:49:29, 조회 : 1,272, 추천 : 186


第6講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요한一書 1:5-7
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一書의 머리말을 보면 이 글을 쓴 使徒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使徒답게 自己 使命, 곧 自己가 맡은 일에 忠實하여 하나님께서 傳하라고 하신 것을 힘써 傳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啓示의 말씀, 永遠한 眞理를 傳하려고 합니다. 太初부터 있던 것, 그러니까 人類가 始作하기 前 하늘과 땅이 생기기 前부터 있던 眞理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永遠히 감추어 두지 않으시고 나타내 주셔서 사람이 듣고 눈으로 보고 注目하고 손으로 만져서 알게 하여 주신 것을 傳하였습니다. 이 眞理는 사람이 알면 滅亡하지 않고 生命을 얻기 때문에 ‘生命에 關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使徒는 이 生命의 말씀을 傳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3節). 사람이 自己 智慧로 얻을 수 없는 眞理를 하나님의 恩惠로 받아서 그리스도의 敎會에 傳하였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있기 以前에 있던 事實과 眞理까지도 包含하는 永遠한 眞理를 傳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使徒가 傳하려는 內容
이 點에 있어서 創世記에 記錄된 眞理와 요한福音에 記錄된 眞理와 같은 眞理를 傳하려는 것입니다. 요한福音의 몇 節을 引用하겠습니다. “그가 太初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萬物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生命이 있었으니 이 生命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2-5). 그리스도께서 太初부터 至今까지 하시는 일이나 그에 關한 것을 요한福音이 말하고 있습니다. 創造하신 일, 빛으로 오셔서 사람들을 깨우치시는 일들을 말합니다. 요한一書도 같은 일을 말하려고 합니다.
이런 眞理를 안다는 것은 人間의 智慧와 힘을 뛰어넘는 일인데, 하나님의 恩惠로 이런 貴하고 永遠한 眞理를 確實한 方法으로 얻었으므로 確信을 가지고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면서 傳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傳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生命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니라”(2節). 이분을 ‘永遠한 生命’이라 불렀는데, 이분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그러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라고 하였습니다. 한 人物을 말합니다. 한 人格의 所有者이십니다. 이것이 2節 말씀인데 3節에 내려가 보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使徒가 傳하려는 內容, 곧 하나님의 말씀이 1節에서는 ‘太初부터 있던 것이요 우리가 들은 바, 눈으로 본 바, 우리가 注目하고 손으로 만진 바’라 해서 사람이 말로써 傳할 수 있는 어떤 內容, 어떤 事實이나 敎訓임을 表示했는데, 2節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니라” 해서 永生하시는 한 분 人物을 表示하였습니다. 그리고 3節에 가면 1節에 말한 生命의 말씀에 關한 眞理를 傳하는 것과 2節에서 말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를 傳하는 것이 서로 別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이라는 이 말씀은 1節에서 말한 것을 다시 反復하는 것입니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2節에서 말한 대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를 傳한 結果로 우리의 사귐이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3節은 1-2節을 綜合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使徒는 하나님의 啓示의 眞理인 生命의 말씀을 傳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傳하여 聖徒의 사귐이 있게 하려고 하였고 큰 기쁨을 바라보고 이 일을 하였습니다.
요한 使徒가 두 가지를 傳하려고 힘썼는데, 結局은 이 둘이 둘이 아니고 하나요 같은 일인 것을 우리가 여기서 봅니다. 이것은 聖經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四福音書와 使徒行傳에도 그렇게 말했고 다른 使徒들의 書信書에서도 그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 使徒들에게 使命을 주신 그 命令에서부터 우리가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聖神이 너희에게 臨하시면 너희가 權能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證人이 되리라”(행 1:8) 하셨는데, 그리스도의 證人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傳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또 갈릴리에서 使徒들에게 命하신 말씀에는 모든 族屬을 弟子로 삼을 것, 洗禮를 줄 것, 그리스도께서 分付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것들을 命하셨습니다(參考. 마 28:18-20)
씨 뿌리는 者의 譬喩는 모든 天國 譬喩 가운데 가장 먼저 알아야할 譬喩인데, 거기에서는 天國 말씀을 傳하는 일이 天國의 일 가운데 가장 重大한 일로 가르쳤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기 爲하여 傳하는 말씀을 ‘天國 말씀’ 或은 ‘말씀’이라고 表示하였습니다.
使徒行傳에는 使徒들과 福音 傳하는 者들이 ‘그리스도를 傳하였다’(8:5), 또 ‘예수를 傳하였다’(17:18)하고 記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4:2에는 “예수를 들어 죽은 者 가운데서 復活하는 道를 傳함”을 말하였습니다. 10:36에는 하나님이 “萬有의 主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和平의 福音을 傳하사” 라고 하였습니다. 28:31에는 使徒 바울이 “膽大히 하나님 나라를 傳播하며 主 예수 그리스도께 關한 것을” 가르쳤다고 記錄했습니다.
바울 使徒는 빌립보서 1:20에서 自己 몸에서 ‘그리스도가 尊貴히 되게 하려 한다’고 말하고, 또 빌립보서 2:16에서 빌립보 敎人들에게 自己가 傳한 生命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라고 일렀습니다. 그것을 보면 바울 使徒는 여러 敎會에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傳하고 生命의 말씀을 傳한 것입니다. 또 主의 天使가 使徒들을 獄에서 끌어내어 주면서 한 말은 “이 生命의 말씀을 다 百姓에게 말하라”(행 5:20)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말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使徒들을 通하여 그리스도를 傳하기를 願하신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신 일을 傳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滅亡하지 않고 救援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敎會는 生命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世上에 오셔서 贖罪를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復活하셔서 하나님 右便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傳할 것이고, 同時에 사람이 被造物인 것과 罪人이며 죽음의 刑罰 아래에 있는 事實과, 悔改와 信仰으로 赦罪와 義롭다 하심과 生命을 얻고 하나님의 子女 됨과 거룩하게 하여주심과 兄弟가 聯合하여 敎會를 이루며 聖徒의 交際를 가질 수 있으며 榮光에 이를 길이 열려 있다는 이 生命의 말씀을 永遠한 眞理로 傳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5節은 이 生命의 말씀의 始作입니다. 只今 요한 使徒가 生命의 말씀을 傳하려고 이 글을 쓰는데, 5節은 그 말씀의 始作입니다. 머리말이 끝나고 傳하려는 바 生命의 말씀이 여기서부터 始作됩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使徒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배운 結果 알게 된 眞理는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眞理부터 始作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하는 것을 重要한 眞理로 가르칩니다.
모세 時代에 이스라엘 百姓이 聖幕을 만들었는데 그때에 여호와의 구름이 그 會幕을 덮고 그 會幕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聖幕 위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百姓이 갈 길을 갔고 구름이 會幕 위에 머무르고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를 때까지 陣을 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聖幕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습니다. 출애굽 때부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引導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땅 위의 使役을 거의 마치신 마지막 무렵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도 좀 더 北쪽 어느 높은 산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을 때에 그들 앞에서 變形되셔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여기서 세 弟子는 큰 印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메섹으로 가는 路中에서 예수께서 바울을 만나셨을 때에는 正午의 햇빛보다 더 밝게 비추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啓示의 必要上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할 때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빛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被造物입니다. 物理的인 빛은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있게 되었습니다. 萬一 하나님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시라면 장님 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볼 期會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님이라도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聖神으로 깨끗하게 되면 볼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이 淸潔한 者는 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하고 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말한 聖經 말씀을 먼저 살펴보십시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居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者시니 그에게 尊貴와 永遠한 能力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여기 빛 가운데 居하신다고 하였는데 빛 가운데 사신다면 그에게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볼 수 없는 者’시라 하였으므로 햇빛보다 더 밝으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빛 가운데 居하신다는 뜻을 우리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은 靈이시라’ 하는 말씀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回轉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하는 말씀도 우리는 같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前書 2:9에 “오직 너희는 擇하신 族屬이요 王 같은 祭司長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所有 된 百姓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奇異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者의 아름다운 德을 宣傳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심을 받아서 救援을 얻고 하나님의 百姓이 된 者는 어둠에서 불러내심을 받아 빛 가운데 살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인데, 마태福音 8:12; 22:13; 25:30에 各各 “나라의 본 子孫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든지 “이 無益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신 말씀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領域, 곧 하나님의 나라는 빛이 가득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者들이 있는 곳은 어둠이 支配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로 하나님을 모르고 悔改하지 않는 者나 悔改하고 하나님의 百姓이 된 者나 다 같이 밤이면 어둠 가운데서 쉬고 낮에는 밝은 빛 가운데서 活動하고 삽니다. 아무 差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當身의 百姓을 그 속에서 불러내신 어둠이나 그들이 들어가도록 하신 그 빛은 우리가 낮에 볼 수 있는 빛이나 밤의 어둠이 아니고 다른 意味의 빛과 어둠일 것입니다.
이런 事例를 볼 때에 聖經에서 빛이나 어둠이라는 말을 隱喩的으로 使用한 적이 많고 ‘하나님이 빛이시라’할 때에도 隱喩로 使用한 것이 分明합니다. 하나님은 知識과 智慧가 豊富하여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고 光明正大하시고 거룩하시고 威嚴스러우시며 또 무슨 일에나 不義가 없으시고 公明正大하심을 나타내기 爲하여 빛이라고 한 것입니다.
舊約 時代부터 빛과 어둠을 知識과 無知, 善과 惡, 義와 不義를 表示하는데 使用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知的인 面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어서 쓰고 다른 때는 道德的인 面을 더 强調해서 썼습니다. 그러나 恒常 이 두 面이 嚴格하게 分離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聯關되어 나타났습니다. 빛은 眞理이고 어둠은 無知와 誤謬이며, 또한 빛은 純潔을 表示하고 어둠은 罪惡을 表示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知識이 있다 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義人입니다. 無知는 單純히 知的으로 劣惡함을 意味하지 않고 道德的으로 惡한 것, 罪가 거기에 따라와서 곁들여 있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의 啓示는 빛이다
聖經 말씀은 律法과 先知者에 나타난 하나님의 啓示를 빛으로 表示하였습니다. “主의 말씀은 내 발에 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또 “主의 말씀을 열므로 愚鈍한 者에게 비치어 깨닫게 하나이다”(130節). ‘말씀을 연다’ 하는 것은 解釋하고 說明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主의 말씀을 빛으로 가르쳤습니다. “대저 命令은 燈불이요 法은 빛이요 訓戒의 責望은 곧 生命의 길이라”(잠 6:23). “또 우리에게 더 確實한 豫言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燈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셋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注意하는 것이 可하니라”(벧후 1:19). 하나님께서 先知者들에게 주신 그 豫言을 가리켜서 밤중 어두운 데 비치는 燈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울 使徒는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나는 啓示도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榮光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치셨느니라”(고후 4:6).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을 알게 하는 빛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知的인 意味와 道德的인 意味를 다 包含하는 것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道德的인 含意를 훨씬 더 가진 말씀이 또 있습니다. 에베소서 5:8以下의 몇 節을 朗讀하겠습니다. “너희가 前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主안에서 빛이라. 빛의 子女들처럼 行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義로움과 眞實함에 있느니라. 主께 기쁘시게 할것이 무엇인가 試驗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參與하지 말고 도리어 責望하라. 저희의 隱密히 行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責望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者여, 깨어서 죽은 者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치시리라 하셨느니라”(8-14節). 여기서 말하는 빛의 열매라든지 어둠의 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福音 眞理를 아는 것과 緊密히 關聯되었지만 道德的인 意味가 매우 强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義로움과 眞實한 것이고 恒常 道德的으로 떳떳한 것이고 어둠의 일이란 道德的으로 公明正大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하나님이 빛이신 것은 聖徒의 사귐과 큰 關聯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귐은 眞理가 通하고 無知와 誤謬가 물러갑니다. 世上에서는 無知와 그릇된 것이 오히려 활개를 치지만, 聖徒의 사귐에서는 하나님께서 啓示하신 바 眞理가 認定을 받고 그것이 通用됩니다. 그래서 眞理가 世上 끝 날까지 保存될 것입니다. 世上에서는 無知뿐 아니라 不義한 것도 無知에 合勢하여 眞理를 가로막고 내리눌러서 抑壓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것에 對하여 震怒하시고 障碍가 되는 것을 치워 주시므로 眞理가 땅 끝까지 달려가게 하십니다. 主께서 敎會를 세우실 때에 “내가 이 盤石 위에 내 敎會를 세우리니 陰府의 權勢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世上에 福音 眞理를 無視하고 反對하는 勢力이 많고 不義와 不信의 勢力이 合勢하여 眞理를 막 내리누르고 ‘基督敎가 별것 아니다. 그 時代가 지나갔다 말하지만 우리 主님의 말씀은 如前히 眞實입니다. 陰府의 權勢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敎會를 어떤 勢力이 이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넘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眞理는 世上끝 날까지 保存되고 땅 끝까지 傳播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當身의 종들로 하여금 참된 것을 찾고 糾明하고 獲得하여 保存하고 傳播하여서 하나님의 子女들이 代代로 眞理를 接하고 眞理의 音聲을 들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빛이셔서 眞理를 保存하시고 保護하시며 참된 證人을 保護하시고 사랑하시는 일을 繼續하시니까 망정이지 萬一 그렇지 않으시다면 世上은 거짓이 眞理를 代身하고 不義가 참된 것을 억눌러 버렸을 것입니다. 벌써 오래前에 억눌러 버렸을 것입니다.
聖徒의 사귐에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은 얼마나 큰 福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으로 우리의 사귐은 眞理의 사귐이 될 수 있고 밝은 사귐이 될 수 있습니다. 世上에 橫行하는 바, 眞理 아닌 것이 眞理인 것같이 行勢하는 似而非한 것, 眞理에서 멀리 떨어져서 洞窟 속같이 캄캄한 것, 或은 灰色 빛깔의 懷疑, 疑心하는 것들을 다 벗어나서 光明正大한 社會에서 우리와 우리 子孫들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世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우리는 眞理를 믿고 이 眞理 가운데서 삽니다. 얼마나 튼튼한 眞理인지 모릅니다. 이 眞理 가운데 사는 사람은 實로 福된 사람입니다. 이 眞理를 모르거나 無視하고 사는 사람은 헤어날 수 없는 늪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릴 것입니다. “萬物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이 말씀은 그리스도에 關하여 가르치고 世上과 萬物에 關하여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 眞理로 말미암아 우리가 每日 生活에서 하나님께 依支하며 하나님께 感謝하고 살 수 있습니다. “이 生命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니라”(요일 1:2). 이 얼마나 眞實한 말입니까!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自己 獨生子를 世上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罪를 爲하여 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者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9-11). 이 十字架의 道, 福音 眞理는 滅亡하는 者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救援을 얻는 聖徒의 사귐에는 하나님의 能力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귐도 道德的으로 健全한 사귐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眞理를 가르치시고 眞理를 알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眞理를 行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前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主 안에서 빛이라. 빛의 子女들처럼 行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義로움과 眞實함에 있느니라”(엡 5:8-9). 하나님의 子女는 惡하거나 그릇되거나 거짓되거나 비뚤어진 것을 버리고 모든 일에 착하고 바르고 眞實한 것을 行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先知者를 通하여 외친 말씀도 그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惡人은 그 길을, 不義한 者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矜恤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容恕하시리라”(사 55:6-7). 하나님께서 悔改하라고 부르실 때에 그 생각을 고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自己 行爲를 調査하여 가던 길을 돌이키고 하나님께서 보이신 길을 擇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使徒도 다음 節에서 그것을 가르칩니다.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움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6-7節). 萬一 우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빛 가운데에서 行해야 할 것입니다. 道德的으로 健實해야 할 것입니다. 眞理를 배운 대로 行해야 합니다. 如前히 어두움 가운데서 不道德한 가운데에서 罪 가운데에서 살면 그의 信仰告白은 眞實한 信仰告白이 아닙니다. 聖徒의 사귐이 있다고 하는 말이 거것이 아니고 참되려면 眞理를 行해야 할 것입니다. 日常生活 가운데에 道德的으로 健實하게 살고 眞實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聖徒의 사귐은 眞理 가운데 있어야 하고 光明해야 하고 또한 道德的으로 健全해야 하고 罪를 미워해야 하고 公明正大해야 할 것입니다.

祈禱
빛 되신 하나님 아버지, 感謝와 讚頌과 榮光을 主께 돌리옵나이다. 저희의 사귐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게 하시고 眞理가 支配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不義가 眞理를 막으려고 할 때 障碍가 되는 것을 거두어 주시고 生命의 말씀과 永遠한 眞理가 저희 가운데 거침없이 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사귐이 道德的으로 健實하게 하시고 罪가 끼어들지 않게 하시고 罪를 씻어 주시고 恒常 公明正大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6. 16.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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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전홍엽 2016/08/26 218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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