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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講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
전홍엽  2016-09-17 08:59:18, 조회 : 1,232, 추천 : 171


第5講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
요한一書 1:1-4
요일 1:1-4
1太初부터 있는 生命의 말씀에 關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注目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生命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者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充滿케 하려 함이로라


요한一書에 記錄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恩惠를 받으려면 여기 처음 넉 節의 序文을 잘 읽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요한使徒는 요한一書를 쓸 때에 分明한 目的을 가지고 쓰면서 처음 序文부터 그 目的을 생각하고 그 目的에 맞춰서 썼습니다. 생각을 깊이 하고 한마디 한마디를 適合한 말을 찾아서 머리말을 썼기 때문에 우리가 이 序文을 잘 읽으면 요한一書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敎訓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一書를 쓴 目的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充滿케 하려 함이로라”(3-4절). 그리스도의 使徒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은 讀者들로 하여금 聖徒의 사귐을 가지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에 參與하도록 하려고 이 書信을 썼습니다.
또 하나의 目的은 이 目的과 다른 것은 아니지만, 5:13에 표시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永生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使徒가 傳한 生命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生命을 얻고 聖徒의 사귐에 參與하게 되는데, 聖徒의 사귐이 信者의 삶에서 具顯이 되고 더욱 眞實하고 아름답게 나타나면 그만큼 生命을 얻은 것에 關하여 알게 되고 ‘果然 우리가 救援을 얻었구나’하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確信이 생기고 그 믿음이 持續的으로 있으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聖徒의 사귐은 더욱 우리 가운데에 具顯될 것입니다. 그래서 聖徒의 사귐과 生命의 恩惠를 받았다는 事實을 아는 것은 서로 影響을 끼칩니다. 聖徒의 사귐이 弱하고 稀微하면 生命을 얻었다는 知識도 稀微하고 聖徒의 사귐이 眞實하고 豊富하면 救援의 確信도 自然스럽게 생기는 것입니다. 逆으로 生命이 나自身이나 우리 가운데 있는지 없는지 分別力이 없으면 聖徒의 사귐도 豊盛하고 아름답게 가지기가 어렵고, 믿음으로 生命을 얻었다는 그 知識이 分明하면 分明할수록 聖徒의 사귐을 가지고 기쁨이 充滿할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關聯이 있는 두 가지 目的을 가지고 요한一書를 쓰면서 처음 序文에서부터 그 目的을 忠實히 나타내려는 것이 使徒의 뜻입니다. 1-4에 表示한 目的과 5:13에 表示한 目的을 가장 잘 나타내려고 처음부터 한마디 한마디 말을 골라서 썼다는 흔적을 우리가 넉넉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머리말에서부터 글의 目的에 忠實하려고 한 것이 글의 形式에까지도 特異한 形式을 取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요한一書는 書信書에 屬합니다. 著者가 分明하고 받는 相對가 分明합니다. 글쓴이가 받는 敎會의 形便을 알고 그 形便에 맞게 便紙를 했습니다.
마태福音, 마가福音, 누가福音, 요한福音, 使徒行傳 같은 冊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冊들도 當時 世上의 形便과 敎會의 形便을 念頭에 두고 福音의 眞理를 傳함으로 빛을 비추고 救援의 恩惠를 끼치려고 했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冊들은 하셨던 말씀이나 있었던 일들을 歷史 記錄에 가깝게 記錄한 것입니다.
書信書는 使徒나 福音을 傳하는 者들이 敎會를 向하여 直說的으로 消息도 傳하고 敎訓도 하고 警告와 責望도 하고 慰勞와 激勵도 하는 便紙 形式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 · 마가 · 누가 · 요한의 四福音書와 使徒行傳, 이 다섯 冊 다음에 로마書로부터 始作하여 모든 書信書는 머리말에 ‘누가 누구에게 便紙를 한다’ 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主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恩惠와 平康이 있기를 바란다’ 하는 祈願이 있는 것이 一般的인 形式입니다. 假令 데살로니가後書 1:1-2을 봅시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主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人의 敎會에 便紙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主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恩惠와 平康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書信은 代替로 이와 같습니다.

요한一書의 形式
이에 比해 요한一書는 ‘우리’라고 했지 좀 더 分明히 글쓴이가 누구인지 이름이나 職責을 밝히지 않았고, 또 ‘너희’라고만 했지 어느 敎會에 쓴다고 表示하지 않았습니다. 이 點에서는 히브리書도 같은데, 다른 모든 書信書와 달리 이 두 書信은 著者와 受信者를 明確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두 冊은 書信書가 아니고 論文 같은 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勿論 神學的인 內容을 論하는 것이 그 안에 있지만 著者는 分明히 一定한 敎會 或은 한 무리의 敎會에게 牧者의 心情으로 會衆의 狀態를 잘 把握하는 가운데 할 말을 하고 있습니다. 假令 요한一書 2:18 以下에 보면 이런 말쓸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敵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只今도 많은 敵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屬하지 아니하였나니 萬一 우리에게 屬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居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屬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18-19節). 이 말은 敎會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敎會 事情을 전혀 모르고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敎會 事情을 잘 아는 사람이 그 事實을 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點은 히브리書도 마찬가지 입니다.
히브리서 6:10-12에 보면 “하나님이 不義치 아니하사 너희 行爲와 그의 이름을 爲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聖徒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懇切히 願하는 것은 너희 各 사람이 同一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所望의 豊盛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約束들을 基業으로 받는 者들을 本받는 者 되게 하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이 敎會도 聖徒의 사귐을 具顯해 나가는 敎會입니다. 그러나 그 一部가 그리스도의 恩惠로 말미암아 믿음과 能力과 사랑을 充分히 發揮하여 舊約의 敎會 生活에서 新約의 敎會로 長成하여 나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가려고 한 듯합니다. 좀 念慮스러운 點이 그 敎會의 一部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히브리書 著者는 보고 그리스도를 傳하고 그의 恩惠가 어떻게 豊盛한가를 깨우쳐서 穩全한 믿음을 가지도록 가르치고 激勵하려는 것입니다.
요한一書는 歷史書도 아니고 論文도 아니고 便紙입니다. ‘나는 어떻다. 너희가 어떻다. 우리가 어떻다’ 하고 繼續하여 여러 番 一人稱 二人稱 代名詞를 쓰고 있습니다. ‘나’라든지 ‘너희’라든지 하는 말은 便紙에서나 하는 말이지 마태福音만 읽어봐도 그렇게 글이 써있지 않습니다. 傳統的으로 敎會에서 이것은 마태의 作品이다 해서 마태福音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마태가 했다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우리가 마태福音을 읽어볼 때에 이 著者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마태가 썼다고 하니까 여러 가지를 봐서 아, 그런가보다 하는 程度지 마태가 했다는 것이 前面에 확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一書는 相對를 ‘나의 子女들아’, ‘兄弟들아’, ‘사랑하는 者들아’. ‘子女들아’ 하는 말로 부르고 있습니다. 親熟히 아는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牧者가 羊떼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一書가 論文도 아니고 歷史書도 아니고 書信인데도 다른 書信書의 形式을 따르지 않고, 著者의 이름이나 職位를 省略하고 받는 敎會의 이름도 省略하고 머리말에서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恩惠와 平康의 祈願도 省略한 채 이 書信書를 始作하는 것은 요한一書를 쓰는 目的에 마음을 集中하고 말을 골라서 이 貴重하고 神聖한 目的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머리말에 더욱 注意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요한一書의 內容
著者는 이 書信을 始作하면서 할수 있는 대로 적은 말로써 꼭 傳達하려고 하는 깊은 思想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말을 쓰면서도 文章이 簡單하지 않고 한 文章이 다 끝나기 前에 어떤 말을 또 곁들여서 해야 할 必要를 느껴 다른 文章을 끼워 넣게 되어서 조금 複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使徒가 글을 쓴 順序대로 따라가면서 如字的으로 飜譯해 보면 좀 더 그 뜻을 分明히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太初부터 있던 바요 우리가 들은 바요 우리의 눈으로 본 바요 우리가 注目한 바요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 生命의 말씀에 關하여 이 生命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者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그 쓴 順序대로 如字的으로 飜譯하면 大體로 이렇게 飜譯할 수 있습니다.
1-3節이 한 文章으로 繼續이 되는데 두 가지의 큰 內容을 말하려고 합니다. “太初부터 있던 바요 우리가 들은 바요 우리 눈으로 본 바요 우리가 注目하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 生命의 말씀에 關하여”라는 이것이 1節인데, 3節로 뛰어넘어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3節) 하고 말하려고 1節을 始作하여 써 내려갔습니다.
使徒들은 그리스도의 福音을 傳播하여 듣는 者들로 하여금 믿고 生命을 얻고 그리스도의 敎會에 들어와서 聖徒의 交際를 具顯하도록 하기 爲하여 하나님의 세움을 받았습니다. 使徒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도 獨特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證人이 될 만한 期會를 주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親히 그들을 세우셔서 이러한 使命을 맡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傳할 福音을 가리켜서 ‘生命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世上에 生命의 말씀이라고 부를 만한 말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렇게 準備하셔서 世上에 傳播한 이 말씀만이 生命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무슨 말을 들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 使徒들에게 付託하셔서 온 世上에 傳播하도록 하신 이 그리스도의 福音을 들으면 사람들이 죽음에서 生命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永遠한 生命을 얻습니다. 그래서 生命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使徒들에게는 그들이 使命을 遂行할 수 있도록 特別히 하나님께서 資格을 갖추도록 準備시켜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보고 만나고 弟子로 따르며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고 그리스도에 關한 啓示를 받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太初부터 있던 永遠한 것을 듣고 보고 注目하고 만짐으로 알 수 있도록 하시고, 이것을 傳하여 듣는 者들이 聖徒의 交際를 갖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큰 事實을 쓰려고 1節을 ‘生命의 말씀에 關하여’까지 쓰고 보니까 그리스도의 福音, 곧 生命의 말씀이 生命의 말씀이 되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世上에 오신 事實이기에 이 重大한 事實을 여기서 말하지 않고 뒤로 미룰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2節의 말씀을 揷入한 것입니다. “이 生命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者니라.” 이 말을 揷入함으로 하려던 말이 暫時 中斷되어서 다시 始作하려니까 1節의 內容을 다시 좀 反復하여 繼續시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한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라 하는 말은 이미 1節에서 한 말이지만, 中斷되었던 말을 繼續하려니까 그것이 새로운 말은 아니지만 簡單히 反復할 必要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 하고 말한 것입니다.

使徒가 傳하는 福音은 하나님의 生命의 말씀
우리가 오한一書의 머리말을 仔細히 들여다보면 첫째로, 이 著者는 生命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福音의 由來가 어떤 것인가, 使徒들이 傳하는 生命의 말씀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確實한 經路를 거쳐서 世上에 나가는가 하는 것을 仔細하게 똑똑히 記錄하려고 하고 있음을 發見하게 됩니다. 使徒가 傳하는 福音은 太初부터 있던 것입니다. 永遠한 眞理입니다. 時代에 따라 變하는 사람의 敎訓의 風潮가 아닙니다. 人間 思想家의 思想의 産物도 아닙니다. 어떤 思想은 特別히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 時代를 風靡하지만 그 時代가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生命의 말씀이 아니니까 아무리 偉大한 思想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永遠히 사로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물결과 같습니다. 밀려올 때도 있지만 물러가는 때가 있습니다. 一時的으로 부는 바람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使徒가 傳하는 福音은 하나님의 生命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工巧히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永遠한 眞理가 啓示되어 使徒들이 直接 듣고 仔細히 눈여겨보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肉身으로 계실 때뿐만 아니라 復活하신 뒤에 神靈한 몸, 榮光스러운 몸도 仔細히 注目하고 만져 보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지 않고 永遠히 사는가? 씩지 않는 몸이 있는가?’ 썩지 않는 몸을 본 적이 없으니까 世上에서는 疑心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使徒들은 씩지 않는 榮光스러운 몸을 보고 仔細히 觀察하고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몸으로 떡을 잡수시는 것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福音은 事實을 傳하는 기쁜 消息이요 믿을 만한 認識 作用을 거처서 確實한 知識을 가지고 傳하는 眞理입니다.
이 著者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使徒로서 自己가 眞理를 傳할 만한 資格을 具備하였다는 確信을 가지고 權威 있게 이 글을 記錄하고 있습니다. 自己가 갖추고 있는 資格을 스스로 느끼고 그 하나하나를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傳하려는 內容이 “太初부터 있던 바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注目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하고 3節에서 다시 反復하여서 ‘우리가 들은 바라’ 하였습니다. 2節에서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한다’ 하였는데 ‘證據한다’는 것은 事實을 事實대로 現場에서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고 듣는 데서 무엇을 알게 되고 知識을 얻게 됩니다. 仔細히 觀察하는 데에서 確實한 知識을 얻습니다. 또한 손으로 만져서 感覺을 通하여 알게 됩니다. 自己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가 아니면 무슨 魂靈인가 알기 爲해서는 손으로 만져 봐서 感覺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永遠히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 關한 知識과 하나님의 뜻도 永遠합니다. 太初부터 있는 것입니다. 使徒들은 하나님의 恩惠로 이것을 보고 듣고 仔細히 觀察하고 接觸할 수 있었고 이렇게 하여 알게 된 것을 널리 傳하라고 하나님께 任命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死亡에서 生命으로 옮겨가고 審判에서 救援을 받으며 敎會가 서고 聖徒의 交際가 땅 위에 具顯되는 것은 사람의 말이나 생각이나 能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永遠한 眞理가 啓示되고 하나님의 종들이 믿을 만한 方法으로 받고 깨달아서 믿을 만한 證據로 말미암아 傳達되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聖徒의 交際는 사람이 지어낸 空想 위에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理想 위에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모래 위에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啓示의 眞理로 말미암고 盤石과 같은 確實한 知識 위에 세워지는 것이요 堅固한 믿음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生命을 얻는 것도 그리스도의 福音이 永遠한 眞理요 使徒들이 堅固한 知識을 가지고 確信으로 傳한 것을 믿어서 된 것이기 때문에 믿는 者는 自己가 生命을 얻은 事實도 알 수 있습니다. 確信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理論과 사람의 敎訓은 時代를 따라 變하지만 使徒들이 傳한 말씀은 永遠하고 우리의 믿음은 永遠히 變치 않습니다. 世上은 變하고 사람들은 不安하고 社會는 變하고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나라는 興했다가 亡하고 오늘 貴하게 여긴 것이 來日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이 됩니다. 人類의 文明이 果然 살아남을지 사람들의 마음이 焦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福音은 變치 않고 永遠하고 많은 사람을 불러 生命에 들어가게 합니다.

福音 眞理의 中心에는 生命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
이것이 우리가 이 머리말에서 배울 수 있는 매우 重要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使徒들이 傳한 福音 眞理의 中心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主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事實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救援하시려고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罪를 爲한 和睦祭로 보내셨습니다.
罪에 빠친 人生이 赦罪를 얻고 죽음에서 나와서 生命을 얻게 되는 길은 다른 아무 方法이 없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依支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慈悲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내신 唯一한 길입니다. 그래서 그를 生命이라고 합니다. 生命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永遠부터 永遠까지 살아 계신 분이요 믿고 依支하는 者에게 生命을 주십니다. 그래서 2節에 “이 生命이 나타내 신 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도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 신 바 된者니라”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罪人을 부르러 온 줄 알고 迎接하면 그는 赦罪와 함께 生命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聖徒의 사귐을 가지고 永遠히 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시고 永遠히 살게 하신다는 意味에서 그를 生命이라고 부릅니다. 生命의 根源이 되시고 生命의 主가 되시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서 生命이라고 합니다. “이 生命이 나타내 신  바 된지라. 이 永遠한 生命을 우리가 보았고 證據하여 너희에게 傳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 신 바 된 者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先在하신 분입니다. 우리와 달리 이 世上에 나타나시기 前에 이미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그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시며 그의 기뻐하시는 바를 行하며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恒常 아버지와 함께 계시고 그의 기뻐하시는 바를 行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에 가장 資格이 있으시고 適合하신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자 世上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一書 5:20에는 그를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시라’하였습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知覺을 주사 우리로 참된 者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者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실 뿐 아니라 그를 世上에 確實히 傳하게 하시려고 確實한 證人들을 세우셔서 使徒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使徒들은 이 生命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世上에 나타내신바 되었을 때에 큰 기쁨과 正直한 마음과 確信을 가지고 보고 들은 대로 그리스도를 傳하였습니다.
요한一書의 머리말에서 우리가 잊을 수 없게 배우는 것은 使徒들은 自己들이 아는 知識과 믿음과 힘과 確信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 主 예수 그리스도를 傳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罪人이요 죽음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고 生命을 얻고 더 豊盛히 얻는 길인 生命의 道理를 傳하고자 힘썼습니다. 使徒들은 그리스도를 傳하고 生命의 말씀을 傳하기를 큰 기쁨과 確信으로 하였습니다. 지칠 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親히 말씀하시기를 “永生은 곧 唯一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者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그를 믿고 알고 그로 말미암아 唯一하신 참하나님을 알게 되면 永遠한 生命을 얻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그 以上 더 滿足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聖徒들은 그 恩惠를 받고 크게 滿足하고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只今 배운 것 가운데 한 군데 바로잡을 것이 있습니다. 요한一書 5:20을 보면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知覺을 주사 우리로 참된 者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者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飜譯대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方今 前에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신 것은 事實입니다. 永遠한 眞理입니다.
그러나 요한一書를 次例로 가르치면서 배우다가 5:20에 이르러서 그 말씀을 더욱 綿密히 살펴볼 때에 거기에 있는 ‘곧’ 字가 原文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참된 者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시니라”고 飜譯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면 結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仲保者로서 世上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者를 알게 하셨는데 그분이 곧 참하나님이시요 永生이시다’ 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永生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啓示하셨다’ 하는 말씀이 됩니다. 聖父와 聖子가 一體이시기 때문에 飜譯을 이렇게도 할 法하고 저렇게도 할 法하여서 이러한 差異가 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처서 요한一書 5:20을 아는 것이 좋겠습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至極히 不足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恩惠를 베푸셔서 主께서 세우신 使徒들의 福音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生命을 얻고 더욱 豊盛한 生命을 얻어서 主님의 사랑 가운데서 聖徒의 交際를 가지면서 살아갈수 있게 하신 것은 아버님의 無限한 恩惠요 測量할 수 없는 恩惠이옵나이다. 저희로 하여금 主님의 이 恩惠를 헛되이 받지 않게 하시고, 使徒가 傳한 말씀이 저희의 마음속에서 믿어진 바가 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主의 子女인 저희로 하여금 이 不確實하고 不安한 世上에서 確實한 知識을 가지고 搖動치 않고 確信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恩惠로 許諾하신 聖徒의 交際를 가지면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에게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온 世上에 傳播하시기 爲하여, 저희에게까지 그 말씀이 傳播되도록 하기 爲하여 確實한 證人들을 使徒로 세우셔서 主를 爲하여 奉事하게 하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그들의 奉事로 말미암아 저희가 永遠한 眞理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奉事로 말미암아 저희가 知識을 얻고 確信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셨사옵나이다. 果然 저희 가운데서 그 恩惠가 열매를 맺게 하시고 確實한 結果를 나타내게 하여 주셔서 主의 모든 子女들이 믿음이 있게 하시고 믿음이 穩全케 하여 주시고 確實한 知識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 저희가 다 하나가 되게 하시고 堅固하게 서서 搖動치 않고 主의 일에 힘쓰는 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6. 9.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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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  第4講 生命의 聖神의 法이 主張하는 生活    전홍엽 2018/06/14 154 793
701  第3講 眞理를 分別하고 깨닫는 生活    전홍엽 2018/05/30 144 808
700  第2講 重生을 體驗하는 生活    전홍엽 2018/05/24 163 785
699  第1講 重生前의 生態    전홍엽 2017/06/07 172 1128
698  第10講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전홍엽 2016/12/10 229 1332
697  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전홍엽 2016/11/10 261 1415
696  第8講 生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行함    전홍엽 2016/10/22 170 1106
695  第7講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거룩한 變化    전홍엽 2016/10/13 187 1021
694  第6講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전홍엽 2016/10/06 186 1272
 第5講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    전홍엽 2016/09/17 171 1232
692  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전홍엽 2016/09/09 168 1163
691  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전홍엽 2016/08/26 218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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