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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전홍엽  2016-09-09 20:21:01, 조회 : 1,163, 추천 : 168


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요한一書 2:7-11
요일 2:7-11
7사랑하는 者들아 내가 새 誡命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誡命이니 이 옛 誡命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誡命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兄弟를 미워하는 者는 至今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者요 10그의 兄弟를 사랑하는 者는 빛 가운데 居하여 自己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兄弟를 미워하는 者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行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시려고 그리스도의 使徒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福音을 傳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福音은 듣고서 믿는 者에게 生命을 주시며 東西로부터 많은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내가 眞實로 眞實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이를 믿는者는 永生을 얻었고 審判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死亡에서 生命으로 옮겼느니라.” 요한福音 5:24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使徒들은 그리스도의 擇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도 하시고 行하시는 것을 보고 듣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기쁜 消息을 世上에 널리 傳하게 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使徒들은 그리스도를 말과 글로써 傳하였습니다. 요한福音이나 요한一書는 이 使徒들 中의 한 사람이 썼습니다. 使徒란 ‘보내심을 받은 者’란 뜻인데, 그리스도의 使徒는 하나님께서 生命의 말씀을 傳하라고 보내신 者입니다. 요한福音이나 요한一書나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을 따라서 分明한 目的을 가지고 썼습니다.

永遠한 生命
지난번에 살펴본 대로 요한福音은 읽는 사람마다 또는 듣는 사람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리스도를 힘입어 生命을 얻게 하려고 쓴 冊입니다. 世上에 많은 사람들이 숨쉬며 돌아다니고 活動하고 있지만 참된 生命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生命이 生命이려면 그 속에 죽음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살았지만 來日 죽을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면 그것은 살았다고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生命이 참生命이 되려면 永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子女가 가진 生命을 참生命이라고도 하고 永遠한 生命, 永生이라고도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羊은 내 音聲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永生을 주노니 永遠히 滅亡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者가 없느니라”(요 10:27-28)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러한 生命이 있는 사람과 이러한 生命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世上의 모든 사람이 다 模樣이 같고 다 같이 밥 먹고 다 같이 옷 입고 왔다 갔다 活動하니까 다 같은 줄로 알지만, 主님의 이 말씀이 참말이라면 決코 같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生命을 가지고 살고 어떤 사람은 生命을 가지지 않고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罪의 삯은 死亡이라”(롬 6:23). 죽음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法을 어기는 罪의 結果로 온 것이므로 罪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참生命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審判과 죽음 가운데 있습니다. 이미 罪人이라는 審判을 받아서 언제 死刑이 執行될지 모르는 두려운 가운데 있는 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직 刑罰을 다 쏟으시지 않고 猶豫하시는 동안에 罪를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를 힘입어 죽음과 審判에서 救援을 얻고 生命을 얻을 것입니다. 요한 使徒가 요한福音을 쓴 目的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傳함으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힘입어 生命을 얻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勿論 이 生命은 一時的이지 않고 永遠한 生命이기 때문에 生命을 얻었으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繼續的인 生命의 發揮, 곧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아시는 바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같은 生命을 받은 聖徒와 交際하며 사는 것이 거기에 따라옵니다. 요한福音은 이것도 그 目的에 包含하고 있지만 優先的으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힘입어 生命을 얻게 하려고 쓴 冊입니다.
요한一書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敎會의 聖徒들이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에 目的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요일 1:3-4).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生命을 얻게 할뿐 아니라 生命을 더욱 豊盛히 얻게 하려고 합니다. 요한一書 1:5-7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움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聖徒의 사귐에는 생각도 變하고 行動도 變하는 것입니다. 世上에 있는 어둠과 罪에서 나온 聖徒들의 사귐이므로 빛 가운데서 行하고 거짓을 버리고 眞理를 따라 삽니다. 빛의 子女로서 모든 착함과 義로움과 眞實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는 凡事에 感謝하며 依支하며 順從하며 祈禱하고 讚頌을 드리며 敬拜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兄弟愛를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이웃 사랑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詩篇 133:1-3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兄弟가 聯合하여 同居함이 어찌 그리 善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鬚髥 곧 아론의 鬚髥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山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福을 命하셨나니 곧 永生이로다.” 舊約 時代에 이스라엘 百姓의 國民 生活 가운데 稀微하게나마 나타났던 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現實化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이 普遍的인 것이고 모든 나라 모든 百姓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고 또한 日常的인 것으로 되었습니다.

生命을 받은 證據
요한一書를 쓴 目的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永生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5:13).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世上에 오셨다 하는 福音을 듣고 믿는 사람은 永遠한 生命을 받았고 永遠한 生命이 自己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 冊을 썼습니다. 요한福音과 요한一書를 다 읽으면 그리스도의 使徒들이 生命의 말씀을 傳하는 目的이 무엇인가를 綜合的으로 알 수 있습니다. 使徒들이 하나님께 使命을 받아서 使命感을 가지고 生命의 말씀을 傳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福音을 듣도록 하기 爲함이요, 듣고서 믿도록 하기 爲함이요, 믿고 生命을 얻도록 하기 爲함이요, 生命을 얻을 뿐만 아니라 生命을 얻은 줄 알도록 하기 爲함입니다.
그리스도의 福音, 곧 生命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重要합니다. 듣고서 믿는 것이 重要합니다. 듣고서 믿으려는 決心도 없고 그냥 지내면 아무 所用이 없습니다. 듣고서 믿는 것이 重要합니다. 眞實하게 믿은 사람은 生命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永遠한 生命을 主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生命을 얻는 일이 重要한데, 또한 生命을 얻은 줄을 아는 것이 重要합니다. 우리는 生命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면 生命을 얻은 줄 알 수 있습니다. 生命이 있으면 그 生命이 發揮됩니다. 하다못해 짐승이라도 돌이나 食物과 달라서 짐승의 生命이 있으면, 假令 강아지라 하더라도 태어나면 얼마 있지 않아서 生命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生命이 發揮가 됩니다. 그래서 ‘아, 이것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산 것이다’ 하고 알게 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子女에게 주신 生命이 거기에 있으면 그 生命이 자꾸 發揮됩니다. ‘아,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었던 것이 이 사람에게는 永遠한 生命이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그 사람 속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반드시 生命이 있으면 그生命이 發揮되는 것이고, 聖神의 引導로 그 生命이 잘 發揮되어서 豊盛한 生命을 가지게 되면 自然스럽게 生命을 얻은 줄을 우리도 알게 됩니다. 自己 自身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서 알게 됩니다. ‘아, 저 사람속에 生命이 있구나. 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더니 生命을 받았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모르고 確信 없이 힘없이 살지 많고 알고 確信을 가지고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子女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世上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이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罪人을 救援하고 生命을 주시려고 獨生子를 和睦祭物로 世上에 보내셨고,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迎接하면 하나님의 子女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아는 同時에 우리가 하나님의 子女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믿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아는 同時에 내가 하나님의 子女 인 것을 알게 됩니다. 同時에 믿는 者들이 다 하나님의 이 큰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子女가 된 것을 알며 兄弟가 된 것을 압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우리의 正體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同時에 우리의 正體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事實을 世上은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믿음이 없이는 이런 것을 體驗할 수가 없고 이런 것을 알아볼 能力이 없습니다. 世上은 人類를 다 같이 생각하지 하나님의 子女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人類 四海同胞라 해서 四海同胞主義를 말합니다. 어떤 冊에 보면 基督敎를 人類 四海同胞主義라고 말합니다. 그럴 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주 속기 쉬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原來 사람을 한 血統으로 다 지으신 것이 事實이고, 한 祖上에게서 나와서 그 나온 사람들이 五大洋 六大洲에 걸쳐서 살고 있는 것이 事實이지만 罪를 지은 關係로 참生命을 얻지 못하고 다 하나님의 審判 아래 있고 죽음 가운데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生命을 받는 것이고, 그 사람이 거듭나서 새 生命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世上에 널리 퍼져서 사는 모든 人類가 다 똑같이 兄弟라, 다 똑같은 사람이라 하고 함부로 이야기 할 수 가 없습니다. 區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區別을 지어 주셨는데, 사람이 그 區別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或時는 그리스도人들이 그렇게 나눈다 하면 ‘偏狹하다. 다 같이 四海同胞主義로 서로 사랑해야지 왜 그렇게 區別을 짓느냐’ 하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님 以上으로 마음이 넓고 하나님 以上으로 사랑이 많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極盡하신 하나님께서 悔改하고 믿는 사람과 悔改하지 않고 그냥 惡한 心情 가운데서, 自己 固執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을 區別을 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區別을 지어 주시면 우리는 그 區別을 따라야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다고 區別을 없애고 살 수 있습니까? 決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世上에서 말하는 四海同胞主義라는 것은 眞理인 것 같지만 眞理가 아닌 것입니다. 分明히 거기에는 區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子女의 生命을 가진 者가 있고, 이 生命이 전혀 없고 하나님의 子女가 아닌 사람들, 하나님의 審判을 견디지 못하고 滅亡할사람들, 이 두 가지로 區別이 됩니다.
그러나 世上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眞理를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救援의 恩惠가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까 嚴然한 眞理이고 嚴然한 事實인데도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고 속임 가운데 지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사랑이 많다든지 무슨 참된 것을 안다든지 智慧가 있다든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自己들의 생각 가운데 人類는 다 같은 人類다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子女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百姓 된 子女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크고 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子女를 몰라보는 것과 아는 것은 人類를 크게 區別하여 놓습니다.
3:13-14을 보면 이 區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兄弟들아, 世上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異常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兄弟를 사랑함으로 死亡에서 옮겨 生命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者는 死亡에 居하느니라.” 믿는 者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子女가 되고, 서로 間에 兄弟가 된 것을 世上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누구인지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고 오히려 外人처럼 생각하고 冷待하고 外人이라고 해서 미워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서로 兄弟로 알고 하나님의 나라의 百姓인 것을 알고 가깝게 느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우리가 兄弟를 사랑하면 우리는 世上 사람과 달리 ‘우리는 生命을 얻었다. 死亡에서 옮겨 生命으로 들어갓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로 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줄을 압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의 子女를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子女이므로 罪를 미워하고 빛 가운데서 行하려고 하는가, 이런 것들이 證據가 되어서 내가 生命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確信을 가지고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의 열매
바울 使徒도 이러한證據를 믿는 者에게서 發見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擇하셨음을 알고 感謝하고 祈禱하였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因하여 恒常 하나님께 感謝하고 祈禱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役事와 사랑의 手苦와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에 對한 所望의 忍耐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記憶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兄弟들아, 너희를 擇하심을 아노라”(살전 1:2-4).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믿음에서 나오는 일을 부지런히 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自然히 믿음의 活動이 나오게 됩니다. 믿음으로 무슨 일을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行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산 믿음, 救援에 이르는 믿음은 믿음의 일을 합니다. 이 데살로니가前書에서 ‘믿음의 役事’라고 하였는데, 役事란 일을 말합니다. 히스토리(history, 歷吏)가 아니고 워크(work)입니다. 믿음의 役事란 믿음의 일입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무슨 일, 活動을 말합니다.
또 사랑이 있어서 手苦스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假令 어떤 境遇를 當하여 그 일이 매우 手苦스럽지만 手苦스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手苦’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自然히 사랑이 있게 되고, 그래서 사랑의 手苦를 합니다. 누가 하라고 하지 않더라도 自己가 즐거워서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를 所望합니다. 主께서 오셔서 그의 榮光을 온 天下에 나타내시고 또 우리를 榮光에 이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오래 참고 믿음을 지키며 善하게 살기를 힘씁니다. 그래서 ‘所望의 忍耐’라 하여 忍耐를 所望에 붙여서 이야기했습니다. 아주 實際的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은 自然히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所望합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바라고 바라는 말이지만, 그 所望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가려면 忍耐가 必要합니다. 오시기는 틀림없이 오십니다. 그러나 오늘 지나도 안 오시고 來日 지나도 안 오시고 一 年 지나도 안 오시고 二 年 지나도 안 오시면 世上 사람들은 ‘그걸 뭐 그렇게 믿느냐? 뭘 그리 所望하느냐?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그런 것을 뭘 그리 所望하고 있느냐?’ 하는 말을 자꾸 하지만, 믿는 사람은 생각할수록 主님이 오시지 않을 수 없고 主님이 다시 오겠다고 約束하신 것이니까 所望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안 오신다면 모든 眞理가 헛되게 될 것이니까 오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所望하는 가운데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참고 善을 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行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惡한 世上에서 善을 꾸준히 行하고 하나님의 뜻을 꾸준히 順從하고 가기 爲해서는 참으로 忍耐가 必要합니다. 所望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가기 爲해서는 忍耐가 必要합니다. 믿는 者는 참으로 所望의 忍耐가 必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者는 所望의 忍耐를 나타냅니다. 그러한 忍耐가 믿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信者들에게서 이러한 行爲와 삶을 볼 때에 使徒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擇하심을 받은 兄弟인 줄 알고 더욱 兄弟愛를 가지고 對하고 그들을 爲하여 祈禱를 드렸습니다. 데살로니가 敎會의 敎人들을 보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를 因하여 主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聖徒를 向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因하여 感謝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祈禱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5-16).
이것에 앞서 分明한 證據는 마음에 있는 믿음을 입으로 告白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是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是認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否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否認하리라”(마 10:32-33)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主님으로 믿는 대로 사람들 앞에서 公共然히 告白합니다. 이것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는 證據입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께로부터 生命을 받았다는 證據입니다. 生命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말할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는 것을 異常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告白한다는 것은 自己가 果然 믿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는 世上의 救主시라는 事實을 믿지 않고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救主라고 告白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者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하나님 右便에 높이셨다고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聖神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러한 믿음을 주셔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使徒는 自己 속에 그런 것이 없으면서 自己가 救援을 얻었다든지 聖徒의 사귐에 參與한다든지 말하는 者들이 있다고 注意를 喚起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試驗해 보지도 않고 檢證하는 일도 없이 根據 없이 救援을 얻었다든지 生命을 얻었다든지 이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거짓을 行하는 일이 되고 스스로 속이는 일이라고 警告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自身에게 믿음과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거짓을 行하는 일이나 스스로속이는 일은 使徒 時代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自己가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을 自信 있게 가겼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便으로는 아무 救援의 確信도 없이 習慣的으로 敎會에 나오면서 ‘救援의 確信을 말하는 것은 主題넘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原則的으로 救援의 確信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天堂에가 봐야지 여기서 어떻게 알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마치 確信을 가지고 믿고 나아가는 것은 주제넘고 驕慢하고, 오히려 盲信하고 따라가는 것이 謙遜인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人에게는 참된 確信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子女들을 사랑하셔서 分明하게 하나님의 뜻을 啓示하여 주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啓示의 말씀에 依支하여 우리는 謙遜히 眞理를 믿고 참된 確信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永生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使徒들이 傳한 生命의 말씀을 믿고 永生을 얻을 뿐만 아니라 永生을 얻은 救援의 確信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永遠한 生命을 받은 確信을 가지고 이 큰 恩惠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感謝하며 堅固하여 흔들리지 말고 主의 일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謙遜입니다. 自己 안에 永遠한 生命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에게 永遠한 生命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또한 忠直한 證人들인 그리스도의 使徒들을 세워 주셔서 生命의 말씀을 傳하게 하여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救主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저희에게 確實한 生命의 말씀을 傳하여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믿고 참된 知識을 가질 수 있게 하시고 참된 確信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을 感謝하옵나이다. 저희를 無知나 懷疑 속에 稀微한 가운데 던져 버리지 않으시고 저희에게 生命을 주시며 참된 것을 아는 힘을 주시고 참된 것을 저희 가까이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그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저희에게 큰 恩惠를 베풀어 주셔서 저희가 그런것들을 알고 믿고 나아갈 수 있게 하심으로 저희가 하나님의 子女로서 生命을 얻은 것과 하나님의 子女라는 事實과 우리 主 예수께서 저희의 救主가 되시고, 저희에게 生命을 주시고 永遠히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무도 저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事實을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感謝한지 알 수 없사옵나이다. 저희 모두에게 이런 믿음을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謙遜히 저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眞理를 굳게 믿고 忠誠스럽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繼續 맺으면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6. 2.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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