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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전홍엽  2016-08-26 19:10:44, 조회 : 1,266, 추천 : 218


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요한一書 2:1-6
요일 2:1-6
1나의 子女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罪를 犯치 않게 하려 함이라 萬一 누가 罪를 犯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代言者가 있으니 곧 義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저는 우리 罪를 爲한 和睦 祭物이니 우리만 爲할 뿐 아니요 온 世上의 罪를 爲하심이라 3우리가 그의 誡命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誡命을 지키지 아니하는 者는 거짓말 하는 者요 眞理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者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穩全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저 안에 居한다 하는 者는 그의 行하시는 대로 自己도 行할지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使徒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셔서 그들이 그리스도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과 글로 世上에 傳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生命의 말씀을 듣고 自己 罪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과 和睦하고 하나님의 子女가 되어서 하나님의 誡命을 지키면, 使徒들과 믿는 者들은 다 같이 聖徒의 交際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요한一書 1:3-4을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傳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합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充滿케 하려 함이로라.”
하나님의 이 生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보내신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傳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는 者는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의 救援의 恩惠를 받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의 거룩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至極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敬畏하며 그의 誡命을 사랑하며 지키기를 즐거워하며, 또한 믿는 兄弟를 사랑하고 안 믿는 사람에 對해서도 前과는 달리 對하게 됩니다.
요한一書는 이러한 事實들을 次例로 記錄하고 가르치는데, 4:9以下에도 이런 말로써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自己의 獨生子를 世上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罪를 爲하여 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者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9-11節). 이렇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우리도 變化를 받아서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품고 살아서 聖徒의 사귐에 들어가게 되면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充滿케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使徒들이 말과 글로써 生命의 말씀을 傳한 것은 그리스도의 敎會와 信者들에게 기쁨이 가득하도록 하기 爲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使徒들과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 盤石 위에 내 敎會를 세우리니 陰府의 權勢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天國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하셨습니다. 이렇게 親히 그리스도의 敎會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復活하신 後에 使徒들에게 大使命을 주심으로 그 뜻을 더욱 分明히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權勢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族屬으로 弟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聖神의 이름 안으로 洗禮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分付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世上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恒常 함께 있으리라”(마 28:18-19).
使徒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福音을 모든 나라 모든 百姓에게 傳하여 悔改하고 믿는 者들을 敎會에 들어오게 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敎訓과 誡命을 가르쳐 지키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聖神이 오시면 能力을 받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親히 世上 끝 날까지 恒常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딘들 안 계신 곳이 없으신 主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것은 사랑을 가지고 함께하시며 그 힘든 일에 도움이 되어 주시겠다는 約束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계신 곳에는 恒常 아버지도 계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恒常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行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聖徒의 사귐에는 祈禱가 있음
敎會 곧 聖徒의 사귐에는 至極히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또한 그리스도를 보내신 聖父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아 敎會에 들어와서 聖徒의 사귐에 參與한 信者들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祈禱하며 讚頌하며 敬拜하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따라 順從하고 살게 됩니다. 世上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을 敬畏하지 않고 살지만 敎會의 信者들은 世上 사람과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百姓이 되고 하나님의 所有로서 하나님을 主님으로 믿으며 섬기고 살아야합니다.
聖經에서는 하나님의 百姓인가 아닌가를 하나님께 祈禱하는가 안 하는 가로 區別한다고 가르칩니다. 예레미야 10:25에 보면 “主를 알지 못하는 列邦과 主의 이름으로 祈禱하지 아니하는 族屬들에게 主의 忿怒를 부으소서”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主의 이름으로 祈禱하지 아니하는 族屬’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主를 알지 못하는 列邦”이라 하고 그다음에 ‘主의 이름으로 祈禱하지 아니하는 族屬’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는 主께서 自己의 길을 指導하여 주시라는 것과 懲戒를 달게 받겠다는 祈禱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人生의 길이 自己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指導함이 걷는 者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懲戒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震怒로 하지 마옵소서. 主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23-24節). 다 같이 罪人이고 스스로는 다 같이 自己의 길을 어디로 行하여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百姓은 하나님께 指導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懲戒해서라도 바른길로 가게 하여 주시라고 祈禱합니다. 그러나 밖에 있는 사람들, 곧 外人들은 전혀 主를 알지 못하여 祈禱하지 않습니다.

祈禱하는 過程에서 배우는 것
主 예수께서도 祈禱를 가르치셨습니다. “또 祈禱할 때 異邦人과 같이 重言復言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本받지 말라. 求하기 前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7-8). 여기에 祈禱의 神秘한 點과 사람과 하나님의 神秘한 關係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作定하시며 또한 作定하신 대로 行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子女들이 祈禱를 하든지 않든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行하십니다. 그러나 子女들에게 祈禱하라고 하시고 求하기 前에는 주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求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門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求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中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生鮮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惡한 者라도 좋은 것으로 子息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求하는 者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너희가 얻지 못함은 求하지 아니함이요 求하여도 받지 못함은 情慾으로 쓰려고 잘못 求함이니라”(약 4:2-3).
子女들이 木石도 아니고 馬소도 아니고 人格을 가진 者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따라 自己의 마음과 뜻을 모아서 하나님께 求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求하지 않아도 子女의 必要를 다 아시지만 子女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謙遜과 尊敬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바라시고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人格을 子女들이 具備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祈禱할 때는 하나님의 啓示인 律法과 福音의 眞理를 注意하라는 것이고. 마음에서 貪慾을 除去하고 純潔하라고 하는 것이고, 두 마음을 품지 말고 全心으로 祈禱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中에 누구든지 智慧가 不足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厚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求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求하고 조금도 疑心하지 말라. 疑心하는者는 마치 바람에 밀려 搖動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主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定함이 없는 者로다”(약 1:5-8). ‘이렇게 祈禱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까 말까? 안 들으시면 어떻게 할까? 안 들으시면 뭐 이렇게 對處하지.’ 이렇게 마음이 나뉘어 가지고 祈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啓示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셨으면 그것을 배우고 믿을 것이고,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믿고 끝인 것입니다. 믿고 穩全한 믿음으로 恒常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지, 또 ‘아닌가? 아니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自己가 스스로 뭘 對處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對處할 수 있는 方法을 생각하고 두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穩全히 믿으실 만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틀림없는 眞理입니다. 永遠토록 참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두 마음을 품어서 안 됩니다. 單純하게 어린아이가 父母를 依支하듯이 믿고 나아오는 것이고 모든 일에 그렇게 할 것이고 祈禱하는 일에서도 그렇게 單純하게 믿음으로 祈禱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祈禱는 求하는 者에게 좋은 것을 얻게 하기도 하지만 그 祈求者로 하여금 하나님을 敬畏하게 하고 自己가 별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다른 사람을 理解하고 사랑하고 돕는 人格이 形成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또한 主께서 求하라고 祈禱를 가르치신 끝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待接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待接하라. 이것이 律法이요 先知者니라”(마 7:12)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꼭 必要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懇切히 求할 때에 그 求하는 過程에서, 祈禱하여 하나님께 應答을 받는 過程에서 自己가 人生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人生인 自己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는 過程에서 다른 사람에 對한, 親舊들에 對한, 다른 家族에 對한 理解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切實히 必要한 것을 깨달은 대로 저 사람에게도 무엇이 切實히 必要하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理解하고 그 사람이 必要한 것을 주기도 하는 그런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祈禱하는 過程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對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는 同時에 이웃에 對하여 兄弟에 對하여 다른 사람에 對하여 ‘내가 어떻게 사랑을 가지고 對하고 理解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도 배웁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待接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待接하라. 이것이 律法이요 先知者니라’ 하신 말씀을 注意하는 것이 必要한 일입니다. 特別히 祈禱를 가르치신 다음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祈禱는 하나님의 子女들이 하나님께서 啓示하여 주신 바 하나님의 뜻을 따라 祈禱할 때에 언제든지 들어주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智慧에 依해 卽時 들어주시기도 하고, 끌고 가시다가 나중에 應答하여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求한 內容과 달리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든 權勢를 가지신 權勢者시며 智慧者이신 하나님으로서 當然한 일입니다. 들어주실 때에도 權勢를 가진 者로서 하나님의 智慧대로 거룩한 뜻대로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百姓이 祈禱를 드릴 때에 卽時 그대로 들으시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祈禱에서 배우는 敎訓
顯著한 例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아모리 사람을 征服하던 때의 일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이라는 城邑에서 軍士를 이끌고 아모리인 王들을 칠 때 그 對敵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逃亡하기 始作했습니다. 그때에 여호수아가 그 先頭에 서서 여호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太陽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수 10:12). 그러자 太陽이 中天에 머물러서 終日토록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달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빛이 있을 동안에 對敵을 다 掃蕩할 수 있었습니다. 또 사무엘 時代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壓制下에 있었는데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全心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 偶像을 버리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 向하여 그만 섬기라. 블레셋의 손에서 너희를 救하시리라’(參照. 삼상 7:3). 이 말에 따라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여서 거기서 크게 悔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百姓이 會集하였다는 所聞을 듣고서 블레셋이 많은 軍隊를 거느리고 치러 왔습니다. 그때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어린羊을 燔祭로 드리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큰 雨雹을 블레셋 사람에게 내리셨습니다. 블레셋 軍隊는 唐惶하고 混亂하여겼고, 이스라엘이 그들을 치고 큰 勝利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例는 卽時 들어주신 境遇입니다.
卽時 應答하시지 않고 또 祈禱드린 대로 꼭 그대로 이루어 주시지 않은 境遇도 그 祈禱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子女 된 者의 心情으로 드렸을 때에는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城을 爲하여 祈禱를 드렸으나 그 城邑들은 亡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祈禱의 應答을 받은 것이고 큰 敎訓도 받았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祈禱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으시고 應答하여 주심을 받고 하나님의 公義로우심을 배웠습니다. 不義한 百姓은 하나님의 審判을 決코 避하지 못하고 世上 끝에서뿐만 아니라 現 歷史의 進行 過程에서도 審判을 받는다는 事實을 배웠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後孫 이스라엘에게는 이 事實이 잊을 수 없는 敎訓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두려움 없이 不義를 恣行하는 다른 나라의 百姓들과는 달랐습니다. 참 이스라엘 百姓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참이스라엘은 義를 思慕하는 百姓이 되었습니다. 人類 歷史上 어느 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義를 思慕하고 살았습니까? 世上 모든 나라의 歷史를 볼지라도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百姓이 特異한 百姓입니다. 이런 것은 그들의 祖上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滅亡시키시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經驗한 바가 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子孫이 繼繼承承 아브라함의 그 말을 듣고 거기서 큰 敎訓을 받아서 自己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不義를 마음대로 行하다가는 언제 그렇게 審判을 받을지 모른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勿論 이스라엘 百姓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참이스라엘 사람들은 거기서 큰 敎訓을 받고 그런 百姓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祈禱함으로 하나님의 慈悲하심을 맛보았습니다. 自己는 티끌과 같은 者일지라도 自己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不足한 것이 많은 롯이지만 그를 불속에서 救援하시는 것을 알았을 때 아브라함은 主의 慈悲하심을 배웠을 것이고 크신 하나님께서 自己 祈禱를 들으신 것을 感謝하고 敬拜하였을 것입니다. 또 바울 使徒가 肉體의 가시가 自己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시기를 세 番이나 祈禱드렸지만 그 가시는 如前히 그에게 있었고 苦痛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 가시로 因하여 自己가 낮아지고 가려지고 主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主의 能力이 더욱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시는 것으로 引導하여 주실 때 그는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恩惠로 된 것”(고전 15:10)이라고 告白하였습니다. 自己를 큰 危險에서 건져 주시고, 敎會에서 聖徒의 交際 가운데 自己가 나타나지 않고 모든 救援의 恩惠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이러한 祈禱는 應答을 받을 때에 敬拜로 나아가게 합니다. 바울 使徒는 이 應答을 받고 틀림없이 하나님께 敬拜하였을 것입니다. ‘왜 이 苦痛이 떠나가게 하지 않으시는가? 왜 이 가시가 그대로 있게 하시는가?’ 하고 不平했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感謝하고 크신 하나님 앞에 敬拜하였을 것입니다.

聖徒의 사귐에는 行爲가 있음
聖徒의 사귐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그리스도가 함께하심으로 반드시 祈禱가 있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祈禱가 없다면 그것이 聖徒의 사귐인지 疑心할 수밖에 없습니다. 聖徒의 交際는 主께서 生命의 말씀이 傳播되게 하시고 믿는 者에게 生命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發生하게 하신 것이므로 生命의 發揮와 生命의 能力의 發揮가 있어서 아름다운 말뿐 아니라 하나님의 子女의 行爲가 나옵니다.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움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1:6-7) 또 2:3-4에 “우리가 그의 誡命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誡命을 지키지 아니하는 者는 거짓말하는 者요 眞理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詩篇의 처음 詩는 福 있는 者를 ‘여호와의 律法을 즐거워하여 그 律法을 晝夜로 黙想하더니 그 行事가 다 잘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惡人의 議論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敎訓을 가까이하며, 罪人의 길에 서지 않고 義人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主께서 認定하시는 생각을 하고 主께서 認定하시는 行爲를 내놓는 사람입니다. 그가 罪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고, 本來는 다른 사람과 같이 墮落하고 腐敗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恩惠로 悔改의 부르심을 받고 自己 생각을 버리고 自己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義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惡人은 그 길을, 不義한 者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矜恤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容恕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土地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播種하는 者에게 種子를 주며 먹는 者에게 糧食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命하여 보낸 일에 亨通하러라(사 55:6-11). 이 이사야 先知者의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聖徒의 사귐은 몇 가지 宗敎 行事에 局限되는 것이 아니고 人生 全般에 걸쳐서 罪人이 自己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自己 길을 버리고 하나님이 認定하시는 길로 나아가는 變化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使徒도 聖徒의 사귐이 땅 위에서 具顯되게 하기 爲하여 懇切히 勸하는 말을 할 때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兄弟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慈悲하심으로 너희를 勸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럴 靈的 禮拜니라. 너희는 이 世代를 本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變化를 받아 하나님의 善하시고 기뻐하시고 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分別하도록 하라”(롬 12:1-2).

聖徒의 사귐에는 讚頌과 敬拜가 있음
하나님의 恩惠로 救援을 얻고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심으로 救援을 받은 者마다 다 같이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恩惠에 感謝하는 것은 當然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聖徒의 사귐에서 讚頌이 또한 빠질 수 없는 要素입니다. 그래서 믿는 者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봅니다. 使徒行傳 10:45-48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割禮 받은 信者들이 異邦人에게도 聖神 부어 주심을 因하여 놀라니 이는 方言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聖神을 받았으니 누가 能히 물로 洗禮 줌을 禁하리오 하고 命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洗禮를 주라 하니라.”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 모든 사람이 믿고 배우지도 많은 外國語도 하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을 높여서 讚頌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하나님의 百姓임을 알고 洗禮를 베풀어 敎會에 들어와서 聖徒의 사귐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讚頌은 救援 얻은 聖徒들이 救援을 받은 本意를 다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當然히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43:21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百姓은 내가 나를 爲하여 지었나니 나의 讚頌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世上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將次 救援하실 새 이스라엘 百姓들을 가리켜서 한 말씀입니다. 信者들은 그리스도와 聯合하여 祭司長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前書 2:5을 보면 “너희도 산돌같이 神靈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神靈한 祭祀를 드릴 거룩한 祭司長이 될지니라.” 그런데 祭司長은 祈禱뿐만 아니라 讚頌의 祭祀도 드리는 것입니다. “우러가 여기는 永久한 都城이 없고 將次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恒常 讚美의 祭祀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證據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善을 行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祭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4-16). 信者는 땅의 나라에 所望을 둘 수 없고 榮光의 나라가 所望인 사람으로서 榮光의 主를 생각할 때에 마땅히 自己 입술로 그 이름을 爲하여 말할 뿐 아니라 그 이름을 讚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讚頌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祭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神靈한 祭祀를 드리는 祭司長이 되려면 善을 行하고 서로 나눠 주고 아울러서 讚頌을 드리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萬一 讚頌을 드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祭司長으로서는 不具입니다. 큰 缺陷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使徒는 골로새에 있는 聖徒들에게 이렇게 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豊盛히 居하여 모든 智慧로 彼此 가르치며 勸勉하고 詩와 讚美와 神靈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感謝함으로 하나님을 讚揚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主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感謝하라”(골 3:16-17).
敬拜도 聖徒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될 때에는 그 子女 된 聖徒는 무엇보다도 敬拜의 心情을 가지고 절하게 됩니다. 信者가 하나님을 믿고 順從하며 하나님께 祈禱하며 感謝하고 讚頌하는 것이 다 하나님을 敬畏하는 禮가 되지만, 敬拜의 境地는 獨特하게 따로 있어서 個人으로든지 聖徒가 全體的으로 하든지 우리 靈魂이 하나님께 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順從하는 일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께 敬拜하는 일은 없는 것이고 믿고 順從하는 者가 敬拜하는 것입니다. 믿고 順從하는 生活 自體가 敬拜라기보다는 믿고 順從하다가도 特別한 하나님의 臨在를 接할 때에 敬拜의 境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祈禱하다가 멈추고 하나님께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기도 하고 讚頌을 드리다가 敬拜의 자리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聖徒의 사귐이란 이와 같이 함께 하나님을 敬畏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證人들이 生命의 말씀을 傳함으로 이러한 사귐이 있게도 되고 거기에 기쁨이 充滿하게 됩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하나님의 無限한 恩惠로 저희를 부르셔서 敎會에 들어오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敎會에 들어와서 聖徒의 사귐을 가질 수 있게 하시는 것을 깊이 感謝하옵나이다. 저희로 하여금 眞實하고 아름답게 聖徒의 交際를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敬畏하는 心情과 서로 사랑하는 心情을 가질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聖徒의 사귐을 가지게 하시고 眞實하고 能力 있는 聖徒의 사귐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것을 爲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셨고 또한 主의 종 使徒들을 세우셔서 生命의 말씀을 傳하시고 저희에게까지 이르게 하여 주셨사옵나이다. 이로 因하여 아버님께 感謝하오며 主께서 이와 같이 저희를 爲하여 行하여 주신 그 열매로 저희 안에 아름답고 眞實하고 能力 있는 聖徒의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5. 26.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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