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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講 하나님의 뜻을 所願하는 生活
전홍엽  2018-08-18 14:58:30, 조회 : 740, 추천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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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덥던 불볕더위가 조금은 기가 꺾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조금 남았다 하오니 끝까지 잘 참아내시기 바랍니다.

오늘로서 중생자의 생활을 위한 강론이 마쳐지게 됩니다. 인내하시며 긴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많은 참고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이 좋으시다 생각하시면 추천 난에 체크해 주시면 계속해서 다른 내용의 강론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第10講
하나님의 뜻을 所願하는 生活
빌 2:1-18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勸勉이나 사랑에 무슨 慰勞나 聖神의 무슨 交際나 矜恤이나 慈悲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合하며 한 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虛榮으로 하지 말고 오직 謙遜한 마음으로 各各 自己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各各 自己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各各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充滿케 하라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根本 하나님의 本體시나 하나님과 同等됨을 取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自己를 비어 종의 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模樣으로 나타나셨으매 自己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服從하셨으니 곧 十字架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至極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者들과 땅에 있는 者들과 땅 아래 있는 者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主라 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榮光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者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只今 나 없을 때에도 恒常 服從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救援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自己의 기쁘신 뜻을 爲하여 너희로 所願을 두고 行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怨望과 是非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欠이 없고 純全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世代 가운데서 하나님의 欠 없는 子女로 世上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生命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受苦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萬一 너희 믿음의 祭物과 奉事 위에 내가 나를 灌祭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1-18節, 特別히 12-16節까지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者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只今 나 없을 때에도 恒常 服從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救援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自己의 기쁘신 뜻을 爲하여 너희로 所願을 두고 行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怨望과 是非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欠이 없고 純全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世代 가운데서 하나님의 欠 없는 子女로 世上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生命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手苦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重生者의 所願
13節에 “너희 안에서 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여기 “行하신다”는 것은 그 안에 힘을 주시고 直接 일을 움직이신다는 말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重生한 다음에 靈魂의 技能이 많이 變해서 重生한 새 生命의 能力을 지닌 存在라는 점을 잘 나타낼 수 있을 만큼 最小限度의 必要한 큰 改裝, 不適當한 것을 뜯어서 고쳐 주신 일을 한 以上 이제 우리 안에서 우리 意志의 움직임을 하나님께서 親히 能力으로 主張하신다는 말입니다. 行하신다는 것은 에네르게오(       ), 에너지를 그 속에 넣어 주셔서 行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行하시는데 自己의 기쁘신 뜻을 爲해 所願을 두고 行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重生을 받은 다음에는 내 뜻을 이 世上에서 이루고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對하여 懇切한 所願을 가지고 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者처럼 모든 行實이 거룩한 者가 되라”(벧전 1:15). 이 말은 모든 行實이 하나님께서 區別한 者답게, 世上 사람이 생각하는 方式이나 世上 사람의 風俗과 傳統을 本받지 말고 이제부터는 마음이 變化를 받았으니 恒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아서 뜻을 따라서 行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 後로는 다시 사람의 情慾을 좇지 않고 - 여기서 情慾은 꼭 나쁜 생각만이 아니라 사람이 所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肉體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 肉體의 남은 때라는 것은 肉身으로 이 世上에 남아 있는 時間을 말하는데 이때를 사람의 情慾으로, 사람이 願하는 대로 生活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主를 믿고 重生한 다음에는 重生한 사람다운 確實한 證據를 나타내기 爲해서 사람의 생각과 慾望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爲하여, 마음에 所願을 두고서 行하게 하신다는 이 말씀을 銘心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理想과 所願하는 여러 가지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肉身의 所欲(갈 5:16)이라 합니다. 이 所欲이란 반드시 나쁜 것만 意味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肉身으로 나쁜 것만 願하는 것은 아니고 좋은 것도 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肉身의 慾心은 聖神을 거스려 對敵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聖神이 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肉身을 거스릅니다. 聖神이 願하는 바와 肉身이 願하는 바가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對敵함으로 結局 우리가 願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眞正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지만 結局 肉身이 願하는 것이 聖神의 所願에 맞설 것 같으면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痲痺狀態 - 永遠히 바른 것을 하기에는 痲痺되어 있는 狀態 - 로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점을 늘 注意해야 합니다. 肉身의 所欲에서 顯著하게 나쁜 것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아, 이것은 나쁘다” 할 만큼 그 現狀이 極端的으로 顯著하니까 잘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과, 理想을 向해서 勞力하는 것과, 좋은 感情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것과, 사람이 熱心을 내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런 것들은 사람이 얼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聖神님이 願하시는 것과 너무나 비슷한 데가 있는 까닭에 흔히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肉身의 所欲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願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잘 깨닫지 못해서 그것을 뒤섞어서 생각할 때 不知不識間에 肉身의 奴隸가 되어 自己 能力으로 義를 이루려 하고, 自己 能力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려 하고, 하나님을 나타내 보려고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는 이 世代를 本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世上사람들이 理想을 세우고, 堅忍 不拔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本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 너희의 思考하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 變化를 받아서 하나님의 善하시고 기뻐하시고 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分別하도록 하라”(롬 12:2). 또 에베소서 5:10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試驗하여 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主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잘 試驗해서 얻은 結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主님의 거룩하신 마음을 自己가 깨닫고 알아야 거기 비춰서 主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아니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까닭에 自己 生活에서 恒常 主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깨달은 길로 나가려는 態度를 重要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따라서 重生者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가를 眞心으로 마음으로 追求하고 思慕해야만 할 것이고, 또 그것을 바로 알기만 하면 그리로 나가겠다는 心情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心情이 없이 그냥 好奇心으로 알아보겠다고 하는 態度는 意味 없는 것입니다.

聖神님을 依支하여 하나님의 뜻을 分別함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穩全하신 그리고 기뻐하시는 뜻을 分別한다는 것은 그냥 내 自身이 現在 가지고 있는 能力으로 얼른 되는 것이 아닙니다. 主를 믿지 않는 사람은 到底히 하나님의 神의 일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요 또한 自己가 아무리 바로 해 보려고 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서 이런 일은 聖神으로만 分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聖神께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할 때 그가 眞理로써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 主님의 크신 約束입니다.
그런고로 聖神님의 크신 能力과 役事가 내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려 주셔야만 내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保惠師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眞理의 聖神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證據하실 것이요”(요 15:26). 聖神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姿態와 참마음을 證據해 주지 아니하시면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眞理의 聖神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眞理가운데로 引導하시리니 그가 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시며 將來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여기서는 모든 眞理 가운데로 너희를 引導하신다는 말씀이 重要합니다. 먼저 引用한 요한福音 15:26 말씀은 하나님의 聖神이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證據하시는 일과 眞理 가운데로 나를 引導하시는 일이 없다면 내 스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알 수 없는 까닭에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主여 主여 하는 사람마다 다 天國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行하는 者라야 들어가리라”(마 7:21).이 말씀을 볼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聖神이 우리 안에서 役事하시는 그 힘을 依支해서 그 일을 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聖神님의 힘이 나를 主張하셔서 主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려면 먼저 聖神을 좇아 行한다는 것이 重要합니다. “너희는 聖神을 좇아 行하라. 그리하면 肉體의 慾心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말씀에서 聖神을 좇아 行하라는 뜻은 우리의 生活과 行爲는 一定한 法則이 있는데 그 法則을 잘 維持하고 나가라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聖神께서 法으로 보이시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좇아서 行하려고 마음에 所願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를 수 없다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聖神이 나를 主張하시고 힘 주시지 아니하시면 내 스스로 이 길을 좇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길대로 살아야 한다'고 굳게 作定하고 依支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重要합니다. 聖神님을 依支하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萬一 우리가 聖神으로 살면 聖神으로 行할지니”(갈 5:25) ‘聖神으로 行한다’는 것은 自己 自身의 行動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法則에 依해서 一定하게, 脫線하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聖神께서 우리에게 最小限度로 - 우리가 너무 어리고 幼稚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가장 微微한 程度라도 - 거룩한 方法을 보이시고 가야 할 길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이때 ‘아, 이것은 좋은 일이니까 내가 해 보겠다'고 덤빌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하는 心情으로 한발씩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問題는 그것이 내 힘에 겨워서 解決할 수 없는 境遇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 世上的인 試驗과 그릇된 것이 붙어 있지만 내가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그때마다 하나님께 마음으로 依支하고 求하고 힘주시기를 바라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잘 할 수 없어도 한발씩 그리로 가야한다’ 생각하고 한발씩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걷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 발을 걸었으면 내디딜 또 한 발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또 한 발을 依支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마음 狀態가 ‘가기는 싫지만 할 수 없이 간다’는 心情이라면, 無理하게 自己를 强拍해서 自己 意志로 自己 慾望을 눌러 가면서 가는 것인데, 이렇게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途中에 무슨 핑계가 있으면 그것을 핑계삼아서 脫線하고 벗어 나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普通있는 일입니다. 그런고로 마음 狀態가 그 길을 神聖한 義務로 確信하고 積極的으로 나가려고 懇切히 要求하는가 하는 것이 重要한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이 일에 對해서 깊이 생각하십시다. 우리 마음가운데 主님을 向해서 나아가려는 懇切한 慾望도 없이 무리하게 밀고 누르면서 가는 것은 聖神의 열매가 아니고, 聖神님이 引導하는 方式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自己 意志로 自己를 눌러서 自己를 만들어 내는 일 뿐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强作을 해서 無理하게 만들어 내는 것은 聖神님을 依支하는 所爲가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다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그 反對를 나타내고 사는 때도 참 많습니다. 例를 들면 남에게 强한 憎惡心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積極的으로 表示하면 그로 因하여 여러 가지 破綻과 괴롬과 시끄러운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해서 結局 그런 괴롬 가운데 빠져들어 가기 싫으니까, 말하자면 自己 自身의 安全과 平安과 幸福을 爲해서 그 憎惡의 對象을 만났을 때에도 좋은 척하고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世上 사람에게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狀態에 빠져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의 憎惡를 露骨的으로 나타내고 破綻을 일으켜야만 正直한가 하면, 世上에서 괴롬과 破壞를 일으키는 正直이라는 것은 意味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어리석은 正直을 意味하는데 結局 가장 善한 結果를 願한다면, 그런 問題에서 마음의 憎惡가 없어지고 憎惡 代身 그와 和平하고 또한 그의 여러 가지 歪曲과 잘못은 하나님께서 審判하실 것을 믿고 불쌍히 여기심을 바라는 心情이 되어야 합니다.
聖神으로 말미암은 이런 心情은 臆志로 强作해서 껍데기만을 假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聖神으로 말미암은 거룩한 마음이 있어야 그런 生活 行動을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데 臆志로 强作하는 것은, 例를 들면 내 마음에 남에게 奉事할 생각이 없는데 敎會 안에서 或은 여러 社會的인 體面으로 봐서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생각하고 나를 누르고 臆志로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聖神으로 말미암아서 自然스럽게 하는 사람과 그 模樣이 대단히 비슷해서 臆志인지 아닌지 確實히 區別할 수 없지만 自己는 區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싫은데 不可不得이 여러 가지에 얽매여서 行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神聖한 義務感과 責務를 느껴서 해 나가는가를 自己가 區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生命의 聖神의 法에 따라 한 걸음씩 前進하면서 聖意를 遂行함
그러니까 聖神님을 穩全히 依支하는 者는 假令 눈앞에 自己가 遵行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이 보였을 때에 自己 마음에 아무 거리낌도 아무 討論도 아무 試驗도 없이 오직 즐겁게 聖意를 遵行하려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聖意 遂行에 邁進하는 것이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神靈한 者도 다른 信者들과 꼭 같이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뜻을 確實히 알기까지 또는 그 後에라도 마음에 여러 가지 試驗을 받으며 또 해야 할 問題들에 부딪치게 됩니다. 여러 가지 試驗과 患難에 對決하는 마음과 態度는 各各 그 ‘속 사람'(엡 3:16, 或은 새사람 엡 4:24, 골 3:10)의 長成의 程度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神靈한 者들에게 共通된 점은 모든 問題를 人間의 힘으로 解決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生命의 聖神의 法(롬 8:2)으로 解決하려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聖意를 確實히 안 神靈한 사람은 그 뜻대로 前進하면서 그릇된 方法과 속임수는 聖神님의 비춰 주심에 依支하여 排除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聖意를 따르는 길 앞에 困難이나 逼迫이 있을 것을 豫想했을 때도 幼弱한 信者들은 흔히 躊躇하고 避할 길은 없을까 하고 걱정도 하지만, 神靈한 者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慰勞를 믿고 彷徨함이 없이 前進합니다. 이때에 前進할까 말까를 心中에 討論하며 行進을 中止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일은 聖神님의 役事와 主管아래 있는 마음 狀態가 아니라 앞길의 患難과 逼迫을 두려워하여 聖意 遂行을 中止해 버리고 苟安에 주저앉고 싶은 옛사람의 마음입니다.
患難과 逼迫을 까닭 없이 받고 또 받는 것이 信者에게는 좋다고 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사람이 勘當할 수 없는 患難辛苦와 逼迫도 많습니다. 人生苦의 悽慘한 悲劇도 많아서, 이를 보고 듣는 사람이 슬픔과 暗澹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世上의 患難, 苦痛은 人類의 罪로 因한 것입니다.
그런 世上에서 贖罪의 道理를 傳播하며 前進하는 길에는 患難이나 逼迫의 惡이 가로놓이기도 합니다. 主의 종 된 者 中에 속사람이 長成한 사람은 그 使命의 途上에 豫想되고 있는 患難과 逼迫을 멀리 바라보며 前進하되, 그것들을 苟且히 避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避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主께 對한 熱烈한 사랑 때문에 가장 열매를 많이 맺는 길을 取하고 나아간 例를 使徒 바올의 生涯에서 봅니다.
主 예수를 世上에 證據하는 사람이 모두 바울 先生 같을 수 없을지라도 神靈한 生活을 하는 者, 곧 萬事를 聖神님께 맡기고 依支하고 前進하는 者는 各其 속 사람의 長成 程度에 따라서 罪의 誘惑도 받고 여러 가지 試驗도 받지만, 모든 問題, 모든 念慮를 주께 맡기고(벧전 5:7) 聖神을 依支하되, 잘 알지 못하는 問題 앞에서는 至今까지 깨달은 말씀의 道理에 그 問題를 비춰 보아서 모든 眞理 가운데로 引導하시는 聖神님(요 16:13)의 보이심을 따라 自己 行步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聖神께서 引導하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疑心하고 彷徨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罪의 誘惑 앞에서는 自己 몸을 쳐서 服從케 하며(고전 9:27), 몸의 邪慾을 順從치 않고(롬 6:12), 自己의 肢體를 不義의 兵器로 罪에게 드리지 않고 도리어 自己 自身을 죽은 者 가운데서 다시 산 者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自己 肢體를 義의 兵器로 하나님께 드려서 罪가 그를 主管치 못하는 것을 確實히 經驗하는 것입니다(롬 6:13-14).
神靈한 者는 罪에 對抗하여 自力으로 싸우느라고 마음에 葛藤과 苦惱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自力을 依支하여 願하는 善(롬 7:18-19)을 行하려는 마음자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恒常 警戒하며, 聖神 안에서 義와 平康과 기쁨을 가집니다(롬 14:17; 갈 5:22).
이렇게 하나님의 聖神께서 거룩한 役事를 늘 充滿하게 하셔야만 하나님께서 引導하시는 거룩한 길로 갈 수 있고, 그 기뻐하시는 뜻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가 안다고 하지만 한꺼번에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最小限度 自己가 前進해야 할 한 걸음은 알아야 합니다. 한 걸음을 알면 또 한 걸음을 前進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聖神님으로 나를 引導하셔야 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다음 자리에 올라가서야 그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보게 되는 境遇가 참 많습니다. 여기서 볼 때는 참 漠漠하고 올라갈 길은 하나밖에 안 보이지만, 그 곳에 올라가 서서 보면 그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 것을 알게 되는 境遇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聖神님의 引導함을 받아서 한 걸음씩 가면 또 다음에 가야 할 곳은 主께서 살펴 주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人生의 길을 갑니다. 더 많이 알고 더 멀리 보면서 걸어간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알 만한 能力이 없습니다. 우리는 來日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시는 대로 忠誠되이 行하는 것이 正當하고 그러노라면 來日 必要한 것들을 얻게 됩니다. 卽, 오늘 나에게 주신 生活에서 主께 忠誠을 다하면 來日 生活에 必要한 것들을 主께서 豫備케 하십니다.

自力이 아닌 聖神의 役事로 自然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所願함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所願으로 두고 行한다’ 하는 것은 結局 聖神께서 내 안에서 役事하셔서, 無理하게 自己 義를 만들어 내지 아니하고 自然스럽게 해야 할 것을 마땅히 하면서 나아가게 하는 事實이 發生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重生한 사람의 意志가 自然스럽게 움직이는 狀態입니다. 重生했다면 그렇게 움직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겠다는 懇切한 所願이 있다면 그것을 證明할 만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찾고 아는 能力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聖神님의 役事로 이미 알게 하신 뜻을 한 가지씩 行하는 데서 얻습니다. 그건 臆志로 强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하나님의 聖神님의 마음, 卽 예수 그리스도的인 마음으로 變化시키사 늘 그때그때 着實하게 일을 勘當하게 하시고 그런 體驗을 次例次例 쌓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道理를 바로 생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人間的인 생각에 빠져들기 쉽고, 功利的인 打算에서 行動하기가 쉽고, 그러한 態度를 取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런 態度는 外貌로 보기에는 聖神님으로 말미암은 自然스런 心情을 가진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즉 自己의 꾀로 말해야 할 것과 아니해야 할 것을 定해서 해야 할 것은 하고, 안 해야 할 것은 안 함으로써 效果도 어느 程度 얻으니까 恒常 自己 罪를 依支하고, 自己 判斷을 依支하고, 自身의 意志로 自己를 制御해 나가면서 살아가는 法을 옳다고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聖神님께서 引導하시는 狀態가 아닌 것을 늘 注意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對해서 말을 아니 하겠다고 했을 때, 말을 하면 不利한 일이 생기니까 않겠다는 사람의 心情으로 그랬다면, 어느 때 그런 條件이 없어지면 곧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라든지 하나님 나라의 原則을 中心으로 생각하지 않고, 自己의 名譽와 幸福, 自己 理想을 中心으로 생각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萬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렇게 하는 것을 願치 않는다 하고 한번 그렇게 비취었으면 永久한 것입니다. 途中에 그것이 變更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때는 이랬다 저런 때는 저랬다 하는 것은 原則이 自己 理解나 自己 理想의 追求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聖神님의 指示와 가르침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떤 問題나 어떤 事件이 왔을 때, 自己 行動과 自己 마음이 聖神님이 나를 主掌하셔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自己 主張이나 理想이나 自己 理解, 또한 幸福 追求와 같은 것들이 動機가 되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를 잘 反省해 봐야 합니다. 이런 것은 우리 안에서 聖神님이 役事하는 所以가 아닙니다. 聖神님이 役事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識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은 “예” 했다가 來日은 “아니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하나님의 뜻을 自己가 分別하느라고 臆志로 하나님의 뜻을 만들어 가면서, 事實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을 하는 境遇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重生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뜻을 追求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自己의 기쁘신 뜻을 爲하여 너희로 所願을 두고 行하게 하시나니”(빌 2:13), 이것이 重生한 사람의 中心에 일어나는 重要한 變化의 한 事實입니다. “우리 안에서 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어떻게 行하시느냐 하면 自己의 기쁘신 뜻을 爲하여 나에게 먼저 그 뜻을 懇切히 所願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充分히 實踐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重生한사람의 證據입니다.
그런 證據도 없이 恒常 무슨 일을 할 때에는 自己 判斷과 自己의 巧知를 가지고 自己 理想을 찾는 精神에서 하는 까닭에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다가 나중에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겠다'하는 것입니다. 自己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慾望에 따라서 이랬다저랬다 하게 됩니다. 聖神님이 役事하는 事實을 確實히 나타내는 바 重生한 사람의 바른 意志로 하는 것이 아니고 人間의 宗敎的인 熱情으로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姿態가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重生한 사람의 生活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늘 懇切하게 所願하는가, 그리고 그 뜻을 向하여 前進하는데 하나님이 能力을 주심으로 行하며 나아가는가, 하나님의 役事가 自身의 意志의 活動속에까지 늘 作用하는가 등을 늘 注意하며 사는 生活입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 속에 하나님의 命令下에서 움직이는 마음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自己 理想이나 自己 幸福 追求나 自己 所見에 좋다고 하는 대로 自己 마음을 이리저리 操縱해 가면서 自己를 正當化하고, 또 무엇을 하거나 않는 모든 問題를 自己가 主張하므로 거룩하신 뜻과 相關없는 生活을 할 뿐더러 그것을 가지고 自己의 宗敎를 떠받치고 나가려는 이러한 生活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참으로 흐리고 다른 것으로 代置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그릇된 것들을 버리게 하시고, 처음부터 率直하고 單純하게 하나님의 聖神님이 役事하는 대로하겠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한번 命令하시고 하나님께서 한번 길을 보이셨으면 끝까지 그 길로 나아 한다는 이 嚴肅한 事實을 바로 깨달아 알게 하시고, 聖神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하고 살아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主 예수님 이름으로 祈禱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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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10講 하나님의 뜻을 所願하는 生活    전홍엽 2018/08/18 146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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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第2講 重生을 體驗하는 生活    전홍엽 2018/05/24 163 797
699  第1講 重生前의 生態    전홍엽 2017/06/07 17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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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전홍엽 2016/11/10 26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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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  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전홍엽 2016/09/09 168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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