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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講 眞理를 分別하고 깨닫는 生活
전홍엽  2018-05-30 21:36:31, 조회 : 735, 추천 : 131

第3講
眞理를 分別하고 깨닫는 生活

   읽으시면서 한글과 한자에 오자가 있을 수 있으니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롬 12:1-21
1○그러므로 兄弟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慈悲하심으로 너희를 勸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靈的 禮拜니라2너희는 이 世代를 本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變化를 받아 하나님의 善하시고 기뻐하시고 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分別하도록 하라3○내게 주신 恩惠로 말미암아 너희 中 各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以上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各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分量대로 智慧롭게 생각하라4우리가 한 몸에 많은 肢體를 가졌으나 모든 肢體가 같은 職分을 가진 것이 아니니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肢體가 되었느니라6우리에게 주신 恩惠대로 받은 恩賜가 各各 다르니 或 豫言이면 믿음의 分數대로7或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或 가르치는 者면 가르치는 일로8或 勸慰하는 者면 勸慰하는 일로 救濟하는 者는 誠實함으로 다스리는 者는 부지런함으로 矜恤을 베푸는 者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9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惡을 미워하고 善에 屬하라10兄弟를 사랑하여 서로 友愛하고 尊敬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熱心을 품고 主를 섬기라12所望 中에 즐거워하며 患難 中에 참으며 祈禱에 恒常 힘쓰며13聖徒들의 쓸 것을 供給하며 손 待接하기를 힘쓰라14너희를 逼迫하는 者를 祝福하라 祝福하고 詛呪하지 말라15즐거워하는 者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者들로 함께 울라16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處하며 스스로 智慧 있는 체 말라17아무에게도 惡으로 惡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善한 일을 圖謀하라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平和하라19내 사랑하는 者들아 너희가 親히 怨讐를 갚지 말고 震怒하심에 맡기라 記錄되었으되 怨讐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主께서 말씀하시니라20네 怨讐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21惡에게 지지 말고 善으로 惡을 이기라.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世代를 本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變化를 받아 하나님의 善하시고 기배하시고 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分別하도록 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重生한 者의 生活에 關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靈魂의 技能의 變化
사람이 重生을 하면 聖神님의 役事로 靈魂의 技能이 크게 變化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變化는 그가 前에는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前에는 하고자 하지 않던 것을 하게 하시고, 前에는 느끼지 아니하던 것을 느끼며, 그러한 心情을 품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前에는 하나님의 말씀, 眞理를 가르쳐도 “그것 틀렸다” 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어느 때는 어리석은 것이다. 不合理하다고(고전 2:14) 하던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참으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分明히 가르치시는 道理가 있으며 이것이 眞理구나” 하고 깨달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重生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예수님께서 童貞女에게서 誕生하셨다”하면 “世上에 그런 法이 어디 있겠느냐? 사람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그것을 强하게 否認을 했지만, 重生한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童貞女 誕生하신 것을 거짓말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아, 그것은 果然 그럴 수 있고, 하나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그렇다” 하고 그것을 首肯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前에는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心情이 있을 까닭이 없었지만 重生한 다음에는 예수님을 보지는 못 했어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벧전 1:8). 重生한 사람은 “前에는 하지 않던 것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前에는 하나님의 뜻을 行하려고 하는 所願이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行하고자 하는 懇切한 所願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빌 2:13). 이렇게 重生한 사람은 靈魂의 技能에 큰 變化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變化된 狀態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實踐의 길로 前進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分別함
무엇보다도 前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는 知的 變化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로마서 12:2 말씀대로 “너희는 이 世代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變化를 받아 ‥‥” 이 말씀은 이 世代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너희의 생각하는 技能을 새롭게 해서, 말하자면 聖神께서 새롭게 해 주시는 큰 恩惠를 받아서 變化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     )은 생각하는 技能을 特別히 가리키는 말입니다. 原語에는 그런 뜻이 아주 明白합니다. 우리말로 마음이라 할 때에 느끼는 것도 마음이고 하고자 하는 것도 마음이지만 特別히 思考의 技能, 思考의 內容을 마음이라는 말로 여기 表現했으므로 “思考의 技能에 變化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分別하도록 해라.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은 善하시고 기뻐하시고 또 穩全하신 것이다. 그것을 分別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척척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自己가 勞力해서 分別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重生한 사람의 生活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分別하는 것이 重要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善하시고 기뻐하시고 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늘 分別해 나가는 것이 重生한 사람에게는 甚히 重要한 生活 態度입니다.
그런고로 聖經은 이 世代의 어두운 것을 本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늘 智慧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15-16에도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行할 것을 仔細히 注意하여 智慧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智慧있는 자같이 하여 歲月을 아끼라 때가 惡하니라.” 特히 17節, “그러므로 어리석은 者가 되지 말고 오직 主의 뜻이 무엇인가 理解하라.” 이렇게 主의 뜻을 바로 理解하라고 했습니다. 마태福音 7:21에는 “나더러 主여 主여 하는 者마다 天國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行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는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할 때 그분, 卽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이시지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분, 그분의 뜻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그분의 뜻을 分別한다는 것이 늘 重要합니다. 恒常 우리는 이 世上 사람의 影響을 받아 잘못된 길로 가기 쉽지만 主께서는 언제나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世上에서 어리석은 짓이나 暗昧한 일에 加擔하던 것을 다 버리고 이제는 主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빛의 子女들처럼 行하라 하신 말씀이 에베소서 5:8에 있고, 9節에는 그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義로움과 眞實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特別히 “主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試驗하여 보라”고 해서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調査하고 試驗해서 確實히 攄得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主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試驗해야 한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알아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主의 뜻이 무엇인가 理解하라 하는 것도 理智的으로 잘 判斷해서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聖神의 役事로 眞理를 깨달음
지난 時間에 배운 고린도전서 2章, 3章도 特別히 우리의 깨달음에 對해서 말씀하시는데, 普通 이 世上에 屬한 사람은 하나님의 聖神의 일을 받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가 미련히 여기고, 不合理한 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닫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또 能力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自己를 사랑하는 者들을 爲하여 豫備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오직 하나님이 聖神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聖神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通達하시느니라”(고전 2:9-10). 이와 같이 “우리가 世上의 靈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神을 받았으니 ‥‥” 왜 그 聖神이 우리 안에 居하시느냐 하면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恩惠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恩惠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려고 聖神께서 役事하십니다. 眞理의 神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主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하신다(요 16:13). 우리가 聖神님으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가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保惠師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眞理의 聖神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證據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證據하느니라”(요 15:26-27).
“그런고로 眞理의 聖神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眞理 가운데로 引導하시리니 그가 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將來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먼저 요한福音 15:26에 “眞理의 聖神이 예수 그리스도를 證據하신다”고 하셨고, 16:13에는 “眞理의 聖神이 모든 眞理 가운데로 引導하시겠고, 將來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한福音 16:8을 보면 “保惠師가 너희에게로 오시면 그가 와서 罪에 對하여, 義에 對하여, 審判에 對하여 世上을 責望하시리라” 하셨는데, 이렇게 우리의 罪를 참으로 責望하시는 것도 眞理의 聖神님의 役事입니다. 聖神께서 役事하지 않으시면 自己 罪에 對해서 自己가 깊이 느끼고 責望을 받지 않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正當한 일, 義로운 일인가 하는 것도 聖神님이 우리 안에서 役事하셔야만 아는 것이고, 또한 將次의 審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없는 神秘한 힘으로 어느 때든지 願하시는 때 審判을 하신다는 이 무서운 事實도 聖神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聖神님은 重生한 사람 속에 이미 居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引導하시는 까닭에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聖神께서 眞理를 깨닫게 하시는데 따라서 우리의 속사람은 每日 長成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長成할 때에 注意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道理가 아닌데 사람 보기에 宗敎的으로 當然한 道理인 것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基督敎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일들이 過去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꼭 異端만이 아니고 사람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주로 이 世上에 있는 宗敎나 道德으로 基督敎를 解釋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眞理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으려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工夫하고 工夫할 때마다 聖神께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眞理의 거룩한 말씀은 聖神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아니 하시면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고전 12:13). 事實上 우리의 思考와 推理의 能力으로 攄得한 知識만 가지고 聖神님께 穩全히 依支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漠然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眞理의 거룩한 말씀을 깨달아 알겠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聖神님께 穩全히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할 때 깨닫는 것이지 덮어놓고 自己의 知識과 智慧로, 或은 어떤 書籍을 읽는 것으로 聖神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代置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聖經冊을 읽으면 그 內容을 全然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聖經에 있는 事實들을 많이 알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참된 깨달음은 아닙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聖神께서 내 안에 眞理를 꼭 심어 주셔서, 그것이 마치 씨를 沃土에다 심은 것같이 長成해서 그 씨의 열매를 내는 때까지 中間에 여러 過程이 있지마는 끝까지 保護하셔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나무를 찍어 불에 던진다고 하셨습니다(마3:10; 7:19). 그런고로 열매를 맺는다 하는 것이 重要한 일이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 씨가 沃土에 잘 던져졌다는 것을 意味합니다. 恒常 좋은 씨와 좋은 나무라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마 7:17; 12:33).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義를 實踐할 수 있는 能力이 없음
이와 같이 眞理가 내 속에 들어오면 그것을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깨닫는 일에서 注意해야 할 것은 聖經에 있는 말씀을 들을 때 듣기만 하지 않고, 實踐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實踐에 옮긴다는 말은 사람이 行할 수 있는 道德的인 敎訓을 들었으면 그 敎訓대로 實行하여야 하겠다는 義務感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實踐하려면 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聖經은 할 만한 힘이 있으면 實踐하고, 할 만한 힘이 없으면 實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聖經은 모든 敎訓을 할 때에 할 수 없는 사람은 하지말고, 할 수 있는 사람만 해라하는 식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實踐할 일이 百 가지 千 가지가 있어도 한 가지만 할 수 있으면 한 가지만 하고 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聖經에 있는 道理들을 自己 힘으로 하려면 할 수 있는 能力이 있어야 할 터인데, 事實上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義의 열매를 맺을 能力이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너무나 높은 하나님의 標準이고, 너무나 完全한 하나님의 要求가 되는 까닭에 스스로 그것을 다 이를 수가 없습니다.
例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要求하시는 것은 “저 밤하늘에 높이 떠있는 별 하나에 올라가 있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이 世上에서 第一 높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山봉우리에 올라간다고 해도 별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하나님의 要求, 卽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뜻을 사람의 좁은 識見으로 잘못 생각하고 그만 自己가 한번 해 보겠다고 하는 때가 있습니다. 果然 어떤 말씀은 퍽 쉽게 할 수 있는 것같이 들립니다. 오늘 읽은 聖經 말씀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或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者는 가르치는 일로 勸慰하는 者는 勸慰하는 일로 救濟하는 者는 誠實함으로 다스리는 者는 부지런함으로 矜恤을 베푸는 者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7-8). 矜恤을 베푸는 者가 즐거움으로 한다든지, 다스리는 者가 부지런히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救濟하는 者는 誠實함으로 하라 했으니 誠實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熱心을 품고 主를 섬기라”(11節) 했으니 부지런할 수 있는 것이고, 게으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主를 섬기되 熱心을 품고 섬길 수가 있다고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聖經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熱心을 품어 主를 섬기라고 했으니, ‘우리는 부지런해야지’ 하고 스스로 熱心을 냅니다. 그와 같은 부지런함이 하나님께서 果然받으실 만한 열매인가를, 하나님께서 行하라고 하신 것들을 잘 注意해서 嚴密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제 힘으로는 行할 수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 힘으로 하나님의 命令을 遵行해 본다고 해도 그것은 사람의 善이요 사람의 義가 되는 것인데, 이러한 사람의 義와 善을 하나님께서 “좋다”고 要求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德과 義는 사람의 血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血肉으로 相當히 좋고 아름답고 착한 것을, 義로운 것을 世上사람 앞에서는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不信者라도 道德 君子가 있는 것이고, 世上 사람도 훌륭하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고 創作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 道德的인 것들을 天國에서도 훌륭한 것으로 認定하사 信者에게 그것을 本받아서 行하라고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不信者의 義와 善과 美에 對해서 萬有의 主宰, 最高의 審判者로서 報賞도 하시고 그것을 그만큼 世上에서 意味있는 것으로 認定하여 주시지 마는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容納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義롭게 나가면 거기에 相當한 報應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不信者라도 公義를 따라서 行하면 公義의 結果를 받는 것이고 慈悲를따라서 行하면 慈悲의 結果를 땅 위에다 맺어 주는 것입니다. 不信者는 그런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元來 만들어질 때에 信者나 不信者나 모두 하나님의 形像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하나님의 形像에 彷佛한 아름답고, 善하고, 義로운 德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犯罪와 墮落으로 腐敗하고, 暗昧한 가운데 빠져들어간 까닭에 사람이 지어내는 義나 善이나 美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榮光의 世界에서 받으시기에는 너무나도 缺乏이 많고 醜惡한 것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의 榮光의 世界에서는 받으시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信者에게 命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信者가 맺어야 할 德行의 열매는 人間의 善이나 義의 世界에서 벗어난, 별다른 世界에서 이루는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重生者도 옛사람의 影響을 받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重生한 사람은 重生한 사람답게 새사람으로서 열매 맺기를 要求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사람이 됐다고 할지라도, 내 속에는 重生하지 아니했던 時代에 行하던 모든 習慣과 생각과 感情이 다 봄눈 녹듯이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남아 있는 것들 즉 옛사람이 事實上 熱心도 내게 하고, 善도 내게 하고, 義도 行하게 하는 점에서는 다른 宗敎의 信者가 自己 宗敎가 가르치는 여러 戒律을 嚴格하게 잘 지키면서 道를 닦는 것과 비슷하고, 世上의 여러 가지 宗敎家 道德的인 것과 훨씬 義롭고 善한 標準을 세우고 行하라고 하는 것들을 行하는 그 熱心과 生活 態度와 根本的으로 다르지 않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恒常 우리가 하나님께서 要求하시는 것을 바로 行하려고 하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며, 어떻게 열매를 맺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르고 義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要求하시는 標準에 맞아야 할 것이고, 그 標準에 맞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聖神님이 내 안에서 役事하여 나타내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聖神께서 重生한 靈魂의 여러 技能을 쓰셔서, 그것이 그리스도와 같은 아름다운 品性을 나타나게 하시는 일이 하나 있고, 또 한 가지는 예수를 믿기 前의 다른 모든 不信者와 마찬가지로 한 人間으로서 善과 義와 美를 追求하며 나타내려고 하는 그러한 勞力, 그러한 熱情이 있습니다. 以上 둘 中에 어느 것을 擇하든지 그 사람을 支配하는 것이 그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때 나타나는 人間으로서의 義나 善을 사람들은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참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남을 救濟하고 남을 잘 도와주고 또 良心을 잘 지키고 正直하게 살면, 남들이 다 稱讚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저 사람 예수를 믿어도 참 眞實하고 道人답게 믿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만 남을 도와주고 寬大하고 義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自己 나름의 宗敎가 있고 自己 나름의 主義가 있어서 그 主義에 充實하게 살면서 義롭고 善하게 行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때는 믿지 않는 사람의 德이 훨씬 높을 수가 있습니다. 世上의 훌륭한 道德 君子, 假令 儒敎의 公子나 소크라테스 같은 人物들의 道德 生活이나, 德性을 높이는 生活을 보면 普通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道理 안에서 스스로 勞力해 보겠다고 하는 德보다도 훨씬 높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眞實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要求에 맞는 生活을 내 自身이 그릇된 가운데 빠져 그릇된 것을 基督敎의 本質인 것같이 생각하고, 人間의 宗敎的 勞力과 宗敎的인 生活 態度를 取하며 道德的인 것을 꾸려 나아가려고 하는 그것이 重生한 사람의 열매냐 하면, 그것을 반드시 重生한 사람의 열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重生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이라도 改過遷善을 해서 사람 앞에 좀더 寬大하고 좀더 義롭고 좀더 眞實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勞力을 얼마든지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옛날에 그렇게 할 수 있던 것과 같이 人生에 對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좀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은 사람의 참된 結果는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結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義로우면 못쓴다든지, 善하면 못쓴다든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마땅히 예수 믿는 사람답게 거룩한 生命의 能力이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러면 自然히 善하고 義롭고 아름다운 것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못 解釋해서 自己 勞力으로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熱心을 품고 主를 섬기고 한다면 그것이 믿음의 바른 道理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眞理를 깨닫는 점에서도 그릇된 것이 가장 바른 것같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에게 影響을 주고, 잘못된 곳으로 끌고 가므로 사람들이 彷徨하기 쉽습니다. 彷徨이라는 것은 恒常 바른 信仰의 道理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基督敎를 한 개의 東洋의 道德 宗敎나, 律法 宗敎와 같이 만들어서 行함으로 큰 괴롬과 큰 잘못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重生한사람은 生活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聖神께 모든 것을 맡기고 依支해서 聖神님이 내 안에서 役事하셔서 나타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聖神님이 役事해서 나타내는 것과 내가 스스로 勞力하는 것은 區別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勞力하면 내가 해야겠다 하는 거고, 聖神님이 나타내서 하는 일은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다. 없으니 하나님의 聖神을 依支하겠다' 하는 心情으로 하는 것입니다. 聖神님께서 恒常 나를 全部 支配하셔서 親히 主張하여 주시기를 懇切히 祈禱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重生한 사람으로서 바로 알고, 또 나아가는 것도 바로 識別하고 나아가야지 그냥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렇거니….’ 하는 사람의 理論 가운데 그대로 뛰어들어가면 어느 새 基督敎가 참된 基督敎의 本質에서 떠나고, 自己 信仰도 本質的인 것에서 떠나서 信仰 代身 自己 스스로 行하겠다 하는 戒律과 自己 道德이 自己를 支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特別히 主義하시기 바랍니다.

祈禱
사랑하시는 아버지, 오늘 重生한 者의 道理에 對해서 다시 또 한가지를 생각하게 하심을 感謝하옵나이다. 聖神님을 依支해서 우리 마음 가운데 信仰이라고 하는 姿態가 明白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러지 아니하고 自己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려고 스스로 애를 쓰고 勞力을 하는 그릇됨 가운데 빠져서, 거룩한 敎會의 道理를 混濁케 하고 그르칠 수가 있사온대 그런 誤謬 가운데 저희들이 빠져 들어가지 않게 恒常 眞理의 바른 것을 가르쳐 주시고, 바른 것을 더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바른 것을 바로 깨달아 안사람답게 主님의 모든 準備에 依하여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主 예수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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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  第10講 그리스도에게서 眞理를 배운 사람의 生活 態度    전홍엽 2016/12/10 201 1247
697  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전홍엽 2016/11/10 237 1324
696  第8講 生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行함    전홍엽 2016/10/22 157 1056
695  第7講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거룩한 變化    전홍엽 2016/10/13 179 983
694  第6講 聖徒의 사귐은 眞理 안에서 이루어짐    전홍엽 2016/10/06 172 1211
693  第5講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사귐    전홍엽 2016/09/17 157 1174
692  第4講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    전홍엽 2016/09/09 156 1108
691  第3講 聖徒의사귐은 하나님을 敬畏하고 서로 사랑함    전홍엽 2016/08/26 20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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