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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전홍엽  2016-11-10 15:00:47, 조회 : 1,324, 추천 : 237


第9講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 가운데서 行하는者들
요한一書 1:5-2:2
요일 1:5-2:2
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傳하는 消息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行하면 거짓말을 하고 眞理를 行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行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萬一 우리가 罪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眞理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萬一 우리가 우리 罪를 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義로우사 우리 罪를 赦하시며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萬一 우리가 犯罪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者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나의 子女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罪를 犯치 않게 하려 함이라 萬一 누가 罪를 犯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代言자가 있으니 곧 義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저는 우리 罪를 爲한 和睦 祭物이니 우리만 爲할 뿐 아니요 온 世上의 罪를 爲하심이라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에게는 조금도 어둠이 없으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聖子 예수 그리스도께서 世上에 오셨을 때에는 빛으로 오셨고 救援의 恩惠와 眞理를 널리 傳하셔서 유대人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누구든지 悔改하고 믿으면 赦罪와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敎會에 들어와 하나님과 和解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며, 聖徒의 交際에 들어와서 빛 가운데 行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는 眞理에서 멀리 떠나 살지 않고 眞理를 行하며 眞理 가운데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使徒들이 生命의 말씀을 傳하는 目的
使徒들은 이 일을 爲하여 세움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래서 使徒들은 그리스도의 福音을 傳하였습니다. “聖經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罪를 爲하여 죽으시고 葬事 지낸 바 되었다가 聖經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後에 열두 弟子에게와”(고전 15:3-5) 그 外에 많은 證人들에게 보이셨다 하고 하나님의 恩惠의 福音을 傳하였습니다. 이 恩惠의 福音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聖神으로 거듭나서 生命을 얻고 하나님을 아는 知覺을 얻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리스도를 主님이라고 부르고 引導하심을 받으며, 같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聖徒들과 함께 사귐에 들어갑니다. 聖徒의 사귐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恩惠 가운데 살고 자라며, 배운 바 眞理를 行하고 그 眞理 가운데 行할 수 있게 됩니다.
使徒들이 이 生命의 말씀을 傳하는 것은 이러한 聖徒의 사귐을 造成하며 거룩하게 維持하고 保護하고 保存하려는 것입니다. 聖徒의 사귐은 世上에 없던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심으로 새로이 創造하시려는 것이며,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시는 사귐이므로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것이므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고 使徒들은 그것이 비록 새로운 일이고 힘든 일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앞에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 生命의 말씀을 傳하였습니다.
使徒들은 이 일을 爲하여 하나님의 恩惠 아닌 것과 眞理 아닌 것이 그 가운데 있으면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除去하고 씻어내며 하나님의 恩惠와 眞理를 더욱 供給하여 聖徒의 사귐을 세우고 깨끗하게 保存하려고 합니다.
使徒들이 그리스도의 恩惠와 眞理로 새로 지은 聖徒의 사귐이라면 거기에 恩惠 아닌 것과 眞理 아닌 것이 있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되지만, 이 世上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似而非한 것, 비슷하나 아닌 것, 眞理인 듯하나 실은 거짓인 것이 틈을 타고 들어와서 참된 것 곁에 끼이는 일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하나님께서 先知者들을 하나님의 百姓 가운데 보내셔서 부지런히 가르치고 깨우치고 바로잡으셨지만 그때마다 거짓 先知者가 나타나서 百姓을 꾀어 하나님의 恩惠에서 멀어지게 하고 眞理를 가리고 어둡게 하였습니다. 舊約의 歷史에서 보면 다 잘 아시는 事實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使徒들을 세워 땅 끝까지 빛을 宣傳하게 하시자 이때에는 거짓 使徒들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거짓 先生과 거짓 兄弟들도 생겨났습니다. 使徒들은 이와 같이 거짓 先知者와 거짓 使徒들과 거짓 先生과 거짓 兄弟들과 싸우면서 主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對敵하는 魔鬼가 그리스도에게 十字架에서 敗하였지만, 永永한불에 들어갈 때까지 아직은 活動하도록 許諾을 받아서 活動하고 있고, 또 世上이 아직 다 審判을 받지 않고 自己의 榮光과 威力을 發揮하고 있고, 信者들도 自己들이 새사람이 된 그대로 聖神을 좇아 살지 않고 肉身을 좇아사는 일이 있으므로, 거짓이 틈입(闖入)하여 眞理를 가리고 하나님의 恩惠 아닌 것이 恩惠인 듯이 假裝하여 하나님의 恩惠를 헛되이 받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異常한 일이 아닙니다. 魔鬼는 처음부터 거짓을 지어내기를 좋아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꾀어 黑暗과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人類의 始祖에게 順從을 가르쳐서 사람의 至福의 狀態와 生命에 이르게 하시려고 “동산 各種 나무의 實果는 네가 任意로 먹되 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實果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丁寧 죽으리라”(창 2:16-17) 하고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뱀으로 말하기를 “너희가 決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善惡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해서 하나님의 本心에 猜忌心이라도 있고 마음이 좁은 것같이, 거짓으로 離間을 시키면서 決코 죽지 않으리라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말을 했습니다. 거짓말로 사람을 넘어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魔鬼의 手法입니다. 人類 歷史의 始初에 이 같은 짓을 하더니 마지막 날에 이르러 救援의 福音이 傳播되는 데까지 손을 뻗쳐서 거짓말이 流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便紙를 쓰는 使徒는 한便으로 하나님의 恩惠 아닌 것과 眞理 아닌 것을 가려내면서 참된 것을 가르치고 勸獎하여 그리스도의 敎會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聖徒의 사귐 가운데 섞여 있으면서 그릇되게 말하며 主張하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보고 그 實狀을 드러내며, 聖徒의 사귐에 有益한 하나님의 恩惠와 眞理는 무엇인가를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 使徒의 職務를 다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릇된 主張
먼저 그릇된 말과 그릇된 主張을 하는 사람들의 말 셋을 擧論하고 各各 그 잘못된 것을 指摘하고 하나님의 恩惠와 眞理를 그다음에 가르치는 順序를 取하였습니다. 이 세 말에는 ‘萬一’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누구든지 甚至於 使徒라도 萬一 이런 말을 하면’ 하고, 이런 主張을 하는 사람을 只今 눈에 나타나는 小數에 局限하지 않고 廣範圍하게 假想할 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지난番에 우리가 생각한 대로 ‘나 自身이라도 或時 이런 생각을 하면 크게 反省하고 悔改해야 한다’하는 생각으로 使徒가 只今 하나님의 말씀을 傳하는 것입니다. 또 6, 8, 10節에서 各各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데 行하면”, “萬一 우리가 罪 없다 하면”, “萬一 우리가 犯罪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여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問題로 提起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말로 뚜렷이 主張을 하든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지라도 이런 생각을 굳혀 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우리 모두가 注意하고 反省해야 할 것입니다.
“萬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데 行하면”(6節)하는 境遇를 첫째로 擧論하였습니다. 이런 境遇에 그 사람들이 主張하는 바가 얼른 보기에는 크게 나쁠 것이 없습니다. 外的으로 내세우는 信仰告白과 主張하는 바는 크게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正統 信仰을 告白하고 洗禮를 받고 敎會에도 加入하기를 躊躇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 믿는 바를 깊이 캐물으면 그 眞相이 드러나고 그 正體가 드러나겠지만, 表面的으로는 無欠한 敎人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顯著한 問題는 그 行하는 데에 있습니다. 말하고 主張하는 데에 問題가 있기보다는 그 行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은 如前히 어두움 가운데 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빛 가운데 行하게 됨
그러면 사람이 어두움 가운데 行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文明이 發達되지 못한 어두운 時代라든지 文盲이라 해서 글을 모르는 어두운 狀態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聖經에서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 요한一書 2:9부터 몇 節을 봅시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兄弟를 미워하는 者는 至今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는 者요 그의 兄弟를 사랑하는 者는 빛 가운데 居하여 自己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兄弟를 미워하는 者는 어두움 가운데 있고 또 어두움 가운데 行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9-11節). 하나님의 救援의 恩惠를 받아서 悔改하고 믿은 사람은 하나님제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關係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者로서 같이 사랑을 받는 믿음의 兄弟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至極히 自然스러운 狀態입니다. 兄弟를 마땅히 사랑할 者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전혀 없이 洗禮 받기 前이나 아무差異가 없이 血緣을 찾고 地緣이나 學緣을 찾고 或은 같은 分野에서 일을 하거나 社會 活動을 하는 사람들을 가깝게 여기고 그것으로 그치고, 믿는 兄弟를 마음으로 가깝게 여기는 것이 전혀 없다면 그런 것이 어두움 가운데 行하는 것입니다.
兄弟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者 예수 그리스도를 眞正으로 믿고 따르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일 없이 兄弟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산 믿음에서 兄弟 사랑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福音 8:12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世上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者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生命의 빛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어둠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生命을 얻은 좋은 例를 聖經이 特別히 記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洗禮者 요한이 잡혔다는 消息을 들으시고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故鄕 나사렛에서 交通이 좋은 가버나움으로 移徙하셔서 그곳을 中心으로 갈릴리 一帶에서 福音을 傳播하며 活動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마태福音 4:15-16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江 저편 海邊 길과 異邦의 갈릴리여, 黑暗에 앉은 百姓이 큰 빛을 보았고 死亡의 땅과 그늘에 앉은 者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原來 이사야 先知者의 豫言인데, 예수께서 이 地域에 오셔서 福音 使役을 하심으로 ‘이때에 이루어졌다’ 하고 마태는 記錄하였습니다.
갈릴리는 原來가 남달리 支派의 北쪽 地域인데 납달리뿐 아니라 스불론, 아셀 等 여러 支派의 地域을 總括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地域은 舊約 列王[의 時代에 北쪽 이스라엘 王國에 屬하여 南쪽 유다 王朝보다 먼저 배교(背敎)하고 偶像을 섬기고 不義를 行하다가, 수리아나 아시리아의 侵掠을 자주 받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큰 懲戒를 받아서 아시리아 軍隊에 百姓의 多數가 捕虜로 잡혀가서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外國에 가서 外國 사람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 後에 이스라엘 百姓이 本土로 돌아와서 마을과 城邑들을 이루고 살게 되었지만 數百 年의 外國 統治로 말미암아 外國의 影響을 많이 받았고 이스라엘 百姓다운 意識도 稀薄해졌습니다. 또 이 地域에는 邊方이 되어서 異邦人들이 많이 와서 살게 되어서 混血人들도 많이 생기고 言語도 갈릴리의 獨特한 사투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대 地域의 유대人들에게 蔑視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겠느냐?’ 또는 ‘갈릴리에서는 先知者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하는 말을 例事로 하였습니다.
갈릴리는 過去에 偶像을 많이 섬기고 罪를 많이 지은 땅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異邦 나라 같은 곳이요 苦痛과 蔑視를 많이 當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을 하실 때에 이곳을 擇하시고 이곳을 中心으로 이곳에서 부터 本格的으로 福音 使役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黑暗에 앉은 百姓이 큰 빛을 보았고 死亡의 땅과 그늘에 앉은 者들에게 빛이 비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弟子들이 많이 생겼고 열두 弟子도 이곳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十字架에 달리실 때에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女子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復活하실 때 무덤에 찾아간 女人들도 갈릴리 女人들이었습니다. 天使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 28:7)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世上을 떠나 昇天하실 때에도 이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天使들이 이르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빛으로 오셨을 때에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福音으로 부르실 때에 따랐습니다. 큰 무리가 얼마쯤 따르다가는 나중에는 어렵다 하고 떠났을 때에도 이들은 繼續 따랐습니다. 十字架의 그늘까지 따랐습니다. 復活 昇天하여 世上에서는 다시 뵐 수 없을 때까지 따라갔습니다.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큰 無知와 黑暗 속에서 큰 빛을 보았고, 깊은 罪惡 가운데서 悔改하고 赦罪와 義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眞理를 알고 자라갔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罪에서 깨끗하게 하여 주심을 받았습니다. 責望을 받고 깨우치며 고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을 보아도 예수님의 叱責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래도 責望을 通하여 하나님의 敎訓을 배우고 眞理를 얻으며 빛으로 나아왔습니다. “義人의 길은 돋는 햇빛 같아서 漸漸 빛나서 圓滿한 光明에 이르거니와 惡人의 길은 어두움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8-19) 하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恩惠와 敎訓으로 漸漸 거룩한 子女의 模襲을 갖추어 갔습니다. 이들은 어두움 가운데 있다가도 빛 가운데 行한 사람들의 좋은 本보기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者는 永生을 얻었고 審判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死亡에서 生命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는데, 果然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者가 兄弟를 사랑하게도 되고 빛 가운데 行하는 것입니다. 빛가운데 行한다는 것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그리스도를 배우며 따르는 것에서 빛 가운데 行하게 되는 길을 發見합니다. 黑暗과 깊은 罪와 死亡에 않았을지라도 福音의 부르심을 받고 빛을 따를 때에 빛이 있는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둠 가운데 다닌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聖經은 沈黙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여 줍니다. 또 하나의 좋은 例는 니고데모인데 그는 바리새人이며 유대人의 官員, 公會員이었습니다. 自己의 職位에 附合하기 爲하여 律法에 熱心이었습니다. 百姓의 指導者로서 誠實한 사람이요, 따라서 그 社會에서 尊敬을 받는 人物입니다. 當時 祭司長이나 다른 바리새人들보다 훨씬 律法에 忠實하고 眞實하게 行하는 面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하시고, “聖神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네가 거듭나야 하겠다”(요 3:5, 7)하는 말씀을 하실 때에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百姓들 위에서 名聲과 尊敬을 받으며 하나님의 律法을 따라 國民 生活을 指導하고 裁判도 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아직은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恩惠를 모르고 眞理를 말씀하실 때에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先生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 하는 말씀을 그는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宗敎에 關해서 여러 가지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主님께서 아주 平易한 事實을 이야기할 때에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後에 ‘하나님이 世上을 이처럼 사랑하사 獨生子를 보내신 것’을 聖神의 强하고 奇異한 能力의 役事로 깨달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恩惠로 謙遜히 믿고 빛의 나라로 들어갔겠지만, 이때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百姓들이 다 認定하여 주고 自己도 잘 간다고 생각을 하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어두움 가운데 걸어가고 있었고 언제 무엇에 걸려서 넘어질지 모르는 狀態에 있었습니다. 一旦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危險한 狀態에 있었습니다.
自己가 모든 節次를 밟고 正當하게 하나님의 百姓 가운데 들어와서 아무 遜色이 없는 無欠한 敎人이고 聖徒의 사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他人도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어두움 가운데 걸어 갈수 있습니다. 問題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救援의 恩惠를 받고 빛을 받아 變化하며 繼續하여 眞理 가운데 살아가는가, 아니면 그런 恩惠나 眞理 가운데 繼續 살아가는 일이 없는가 하는 點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듣고 깨닫는 것이 恒常 重要합니다. 그래서 主께서도 ‘귀 있는 者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듣고 깨달아야 하고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라고 聖神계 依支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의 입으로 나온 말씀만이 아니고, 舊約 聖經의 先知者들의 말씀이나 新約의 使徒와 先知者들의 말씀도 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包含됩니다. 그리스도의 神, 聖神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後書 1:19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또 우리에게 더 確實한 豫言이 있어 어두운데 비치는 燈불과같으니 날이 새어 셋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注意하는 것이 可하니라. ”舊約의 豫言의 말씀은 어두운 데 비추는 燈불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 길을 비추는 밝은 빛입니다. 黑暗 中에 있는 世上에서는 그 豫言의 말씀도 우리의 길을 비추는 밝은 빛입니다. 거기에 比하면 新約의 모든 生命의 말씀은 대낮의 햇빛과 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 가운데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어둠에 다니지 않게 됨
그다음으로 使徒는 ‘우리가 罪 없다’ 하는 境遇를 擧論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어두움 가운데 걸으면 道德的으로 墮落한 世上의 標準을 끌어오든지 自己가 가지고 있는 道德의 水準으로 標準을 삼든지 해서 살아가려고 하고, 그 길에 익숙하게 되면 이러한 생각을 품게 되고 ‘내가 누구를 害치기를 했나, 國家에 叛逆을 했나, 내라는 稅金을 다 내지를 않았나’ 하고 悔改하거나 後悔할 만한 罪가 없다고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生活感情과 生活 態度를 깊이 反省하지도 않고 敎會에 나와서 다니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敎會에 들어올 때에야 自己가 罪人인 것을 말하지 않고는 들어올 수가 없겠지만, 그 告白이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다니다가 마음이 높아져서 잊어버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理由로 敎會에 다니면서도 ‘우리가 罪 없다’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罪를 지을 때 이 社會 狀態와 가정 形便과 周圍 環境의 影響이 罪를 加重시키는 境遇가 많으니까 이런 것에다가 罪를 轉嫁시키고, 罪지은 사람이 罪가 없는 것처럼 말하든지 或은 있다하더라도 罪를 弱化시켜 버립니다. 特別히 現代人에게는 心理學이나 社會學이 이러한 理論들을 자꾸 내놓아서 罪意識을 弱化시키고 사람에게는 罪가 없는 것같이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자리와 이런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않으면 救援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重要한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것입니다. 自己의 罪와 부끄러운 것이 드러날지라도 罪 없고 義로우신 主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律法과 誡命의 말씀에 自身을 비추어보는 것이 重要합니다. 自己 行動이 하나님의 誡命에 어긋났으면 그것은 顯著한 罪가 됩니다. 또 罪를 깊이 뉘우치는 사람은 自己 行動을 調査할 뿐 아니라 ‘都大體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러한 行動을 하는가?’ 하고 하나님 앞에 赤裸裸하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眞理의 빛에 비춰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처럼 律法을 無欠하게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빛 앞에 나타났을 때는 ‘나는 罪人 中에 魁首라’ 하였습니다. 많은 罪人들 中에서도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悔改하는 詩篇 51篇에서 “대저 나는 내 罪過를 아오니 내 罪가 恒常 내 앞에 있나이다”(3節) 하였습니다. 또 “내가 罪惡 中에 出生하였음이여 母親이 罪 中에 나를 孕胎하였나이다”(5節) 하였습니다. 自身을 깊이 反省할 때에 自己가 날 때부터 罪人이고 自己가 罪人이 아닌 때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母胎에 있을 때부터 罪人인 것을 깨닫고 슬퍼하였습니다. 自己가 못된 나무인 것을 認定하고 自己가 못된 나무라 그런 凶惡한 罪를 犯하였다고 告白하는 것입니다.
結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는 우리가 罪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고, 내가 罪人인 것과 罪를 안 짓는 사람이 없다는 事實 앞에서 人類의 墮落과 原罪를 認定하는 것이 智慧입니다. 우리가 다 태어날 때부터 純潔하지 못하고 罪 있는 狀態에 있다는 것과 우리의 始祖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처음 犯罪한 것이 우리의 代表로서 한 것이므로 그것이 또한 내 犯罪요 나도 그 責任을 免할 수가 없다는 것을 認定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한 犯罪로 많은 사람이 定罪에 이른 것같이 義의 한 行動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義롭다 하심을 받아 生命에 이르렀느니라. 한사람의 順從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罪人 된 것같이 한 사람의 順從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義人이 되리라”(롬 5:18-19). 사람은 自己가 제 몸으로 지은 罪도 쉽게 잊어버리고 責任질 생각도 않고 回避할 수 있는 줄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義로우신 裁判長이시고 罪를 다 살피시고 옛날에 지은 罪도 다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罪에서 건져 내시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親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世上에 보내시고 十字架의 刑罰에 내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眞理에 이르지 못하고 自己도 모르고 속아서 救援의 福音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가 罪 없다’ 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智慧는 自己 罪를 自白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깊이 反省하고 自己 個人뿐 아니라 人類의 出發과 그 가는 길을 깊이 되돌아보는 것이 살길입니다. “萬一 우리가 우리 罪를 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義로우사 우리 罪를 赦하시며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것이 智慧요 生命의 길입니다.
이것이 舊約 時代부터 하나님의 百姓을 爲하여 가르친 敎訓입니다. “自己의 罪를 숨기는 者는 亨通하지 못하나 罪를 自服하고 버리는 者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우리가 罪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罪를 自白하면 主의 피 흘려 代贖하신 恩惠로 우리를 容恕하시고 모든 不義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움을 받고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生命을 얻고 우리의 사귐을 가지게 되고 거룩하게 保存되고 維持될 것입니다.

祈禱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어둠 가운데 黑暗의 權勢 아래 있던 者에게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시고 빛으로 비춰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悔改하고 그 가운데서 나오게 하셔서 生命을 얻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게 하여 주시고 聖徒의 사귐에 들어가게 하시고 永遠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빛 가운데서 살게 하여 주셨사오니 저희에게는 測量할 수 없는 恩惠이옵나이다.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救援의 恩惠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마음에 穩全한 믿음과 膽大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고 굳게 서서 搖動치 않고 主님을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或如 하나님의 말씀을 이때까지 들었을지라도 어두움 가운데 다닌 사람이 있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警醒하여서 悔改하고 主께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셔서 누구든지 그에게 나아오는 者는 生命의 빛을 얻게 하셨사오니 主께서는 永遠히 感謝와 讚頌을 받으시옵소서. 主의 子女들에게 더욱 큰 恩惠를 내려 주셔서 저희가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主를 끝까지 따르며 빛 가운데서 行하고 眞理를 行하는 者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救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1996. 7. 7. 主日 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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